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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 칼럼] 국민건강보험, 버나드 쇼는 뭐라고 할까

훌륭한 공적 의료제도 갖췄지만 보장성 한심한 수준

70년 전 의료보장 주창 버나드가 봤다면 개탄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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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7-04-06 19:40:58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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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복지국가 대중 강연에서 '건강보험 하나로'를 길게 설명할 기회가 오면 청중들에게 '버나드 쇼'를 아느냐고 물어본다. 주로 처음에는 대답이 없다. 잠시 후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국 사람인데 1950년에 돌아가신 분'이라고 힌트를 주면 그때부터 하나씩 청중들의 반응이 나온다. 먼저 저명한 극작가라는 대답이 나온다. 그가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는 답변도 들려온다. 또 묘비명으로 유명한 사람이 아니냐는 확인 성격의 질문도 나온다. 분위기가 이쯤 되면 더러는 그의 묘비명에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는 말이 새겨져 있다는 추가 답변까지 나오기도 한다. 다 옳은 대답이다.
   
그런데 내가 강연 도중에 불러낸 사람은 노벨 문학상을 받은 유명 극작가가 아니라 존경받는 사상가 '버나드 쇼'다. 그는 영국 복지국가 운동의 산실인 페이비언 소사이어티에서 활동했던 저명한 사상가다. 94세의 일기로 1950년 사망했는데, 88세 때인 1944년 출간된 그의 저서 '쇼에게 세상을 묻다'는 의료보장과 관련해서 깊은 성찰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 책의 원제는 'Everybody's Political What's What?'인데, 우리나라에서는 2012년 '쇼에게 세상을 묻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이 책에 기술된 73년 전의 글이 현재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준다. 핵심 내용을 인용해보자.

"윌리엄 베버리지가 적절하게 잘 만들어놓은 국가사회보장계획이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 국가사회보장계획으로 인해 사라져버릴 민간보험회사가 반대하는 것은 그렇다 쳐도 이득을 보게 될 사람들까지 격렬하게 반대하는 형편이다. 게다가 국가사회보장계획의 옹호자들조차 대부분 국가사회보장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해서 어떻게 옹호해야 할지 모르고 있다. 우리의 입법자들이 기초적인 보험 원리만 알아도 베버리지의 계획안을 일사천리로 법제화하고 한 달 안에 시행할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베버리지 보고서가 정부 간행물로 출간됐다. 이 보고서는 전후 영국 복지국가의 비전과 전략을 제시했는데, 시대정신을 잘 담아내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보수당은 급진적이라는 이유로 반대했고 노동당은 찬성했다. 이 보고서는 정치적 논란만 반복했고 입법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1944년 당시 88세의 버나드 쇼는 이런 상황을 크게 개탄했다. 국민에게 엄청난 이익과 행복을 가져다줄 사회보장계획이 신속하게 처리되지 않는 게 어이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1945년 총선에서 노동당이 압승함으로써 상황은 급진전되었다. 1948년까지 베버리지 보고서는 일사천리로 실천됐고 지금까지 영국인의 자랑거리인 국가의료보장 시스템(NHS)도 그때 창설됐다.

다행히 버나드 쇼는 베버리지 복지국가 모델의 제도화를 지켜보고 세상을 떠났다. 사람과 세상에 대한 지대한 관심으로 끝까지 활동을 멈추지 않았던 이 저명한 사상가가 지금 대한민국의 국민건강보험을 본다면 뭐라고 할까? 아마 그는 '73년이나 지났건만 이 나라에선 아직도 이 모양인가!'라며 개탄할 것이다. 국민건강보험은 모든 국민을 포괄하는 보편적 가입의 원칙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에 오바마 전 대통령도 부러워할 만큼 잘 만들어진 공적 의료보장 제도로 인정받고 있다. 그런데도 버나드 쇼가 개탄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실질적 보편주의 원칙을 지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편적 가입과 충분한 보장성이 그것인데, 후자가 문제다.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은 의료이용 시점에서 발생하는 전체 의료비 중 국민건강보험이 부담하는 비중인데, 지난 10년 동안 63%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래서 2015년 현재 전체 가구의 약 88%가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해 있고 가구당 월평균 약 30만 원을 민간의료보험료로 내고 있다. OECD 평균 보장성 수준은 80% 초반이고 주요 복지국가들은 대개 85~90%를 넘는다. 이들 나라는 사실상무상의료를 실천하고 있다. 의료비 불안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보통사람들이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할 일은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국민건강보험이라는 훌륭한 제도적 틀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낮은 보장성 때문에 국민 대부분이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고 있다.

민간의료보험보다 공적 의료보장이 훨씬 우월한 것임에도 정치인들은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려는 정치적·법률적 개입을 하지 않고 있다. 보험회사를 운영하는 재벌들과 이들의 영향력에 포획된 관료와 전문가들이 보장성의 확충을 반대하는 것은 그렇다 쳐도 의료보장의 실질적 보편주의로 인해 이득을 보게 될 대다수의 국민까지 눈앞의 부담 증가를 꺼리며 애써 관심을 가지지 않으려는 태도에 대해 버나드 쇼는 크게 개탄할 것이 분명하다. 확신하건대 그가 우리나라에 환생한다면 비급여 항목을 전면적으로 급여화하고 '연간 본인 부담 100만 원 상한제'를 실시해서 OECD 평균 수준의 보장성을 달성하자는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을 적극 지지할 것이다.

나는 건강보험료로 월 20만 원을 낸다. 내 소원은 25%를 더 내는 것이다. 직장가입자인 내가 5만 원을 더 내면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라 고용주도 5만 원을 더 내고, 정부는 국고에서 이것의 20%를 지원해야 한다. 이렇게 12만 원이 만들어진다. 만약 내가 5만 원을 민간의료보험에 낸다면 많아야 3만 원을 돌려받는다. 공적 방식으로 낸 5만 원은 온 가족과 국민이 함께 쓰는 12만 원이 되는데, 사적 방식으로 낸 5만 원은 기껏해야 자신만을 위한 3만 원일 뿐이다. 현재 건강보험료율은 소득의 6.12%로 매우 낮아 OECD 꼴찌 수준이다. 그래서 건강보험료는 가구당 월평균 10만 원, 1인당 4만 원에 불과하다. 이제라도 25%씩(1인당 월 1만 원) 더 내고 OECD 평균 수준의 보장성을 달성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할 필요가 없어진다.

   
죽기 전에 버나드 쇼가 공적 의료보장과 복지국가의 새 시대를 볼 수 있었던 것은 노동당의 총선 압승 덕분에 베버리지 보고서가 일사천리로 제도화됐기 때문이다. 패러다임의 거대한 전환이 필요한 시기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이번 대선은 1945년의 영국 총선만큼이나 중요하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마 버나드 쇼도 나와 생각이 같을 것이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제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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