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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박근혜 조윤선 그리고 낸시 에스터 /정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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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7-04-16 19:14:57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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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4년 전 박근혜는 아버지 박정희의 후광을 등에 업고 화려하게 대통령에 등극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뭇 여성의 기대를 한껏 받았던 그는 임기를 못 채우고 대통령직에서 파면되었다. 이제 그는 뇌물수수 등 13개의 범죄혐의를 받는 피의자 신세로 전락해 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보통 사람이라면 감내하기 힘든 굴곡진 삶을 살았던 그에게 운명은 다시 한 번 질곡의 삶을 안겨주었다.

질곡의 세월을 거치면서 그가 스스로 터득한 삶을 관통하는 열쇠 말은 소통 부재와 배신 트라우마로 간단히 정리된다. 통치자의 덕목으로서는 치명적인 결격 사유다. 그런데도 그는 대통령에 오를 수 있었다. 대중들은 소통 부재를 신비적 카리스마로, 배신 트라우마를 의리로 이해했다. 결과적으로 대통령 재임 동안 박근혜가 보였던 통치 행태는 왕조 시대에서도 찾기 힘들 정도로 시대와 동떨어져 있었다.

박근혜의 통치 행태는 기존의 통상적인 정치적 개념으로는 이해하기 힘들다. 그가 걸어온 삶의 내면에 대한 보다 심층적인 심리적 분석이 필요한 이유다. 심리적 측면에서 박근혜는 대통령은 되고 싶었지만 대통령직을 수행하고자 하는 의지는 없는 사람이었다.

대통령 후보 출마 선언을 하면서 "대통령직을 사퇴합니다"라고 말한 데서 이러한 심리의 일단이 잘 드러난다. 삶의 중요한 시기를 청와대에서 보내고 부모마저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던 박근혜의 심리 상태는 적장자로 태어나 어려서 어머니를 비참하게 잃은 연산군의 심리 상태와 유사하다는 분석이 있다. 결과적으로 왕이 되길 두려워했던 연산군처럼 박근혜 역시 대통령에 대한 의지가 없는 사람으로 해석한다. 수구 세력인 훈구파가 편집적이고 사람을 잘 믿지 못하며 과도하게 의존적인 연산군을 왕으로 옹립해 권력을 유지했듯이, 보수 세력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세상과 등지고 은거하던 박근혜를 정치적 상품으로 과대 포장해서 대통령으로 만들었다고 이해한다.

한국의 유리 천장을 뚫은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국민의 기대를 안고 국제 사회에 등장했던 박근혜의 몰락은 역사는 과연 진전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냥 전개되는 것인가에 대한 새삼스러운 질문을 던진다. 그의 몰락을 지켜보면서 필자는 조윤선과 낸시 에스터(Nancy Astor)라는 서로 대극적인 두 여성 정치인의 모습을 떠올린다.

조윤선은 국회의원을 거쳐 박근혜 정부에서 여성 최초의 정무수석, 여성가족부 장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승승장구한 정치인이다. 엘리트 출신의 변호사로서는 드물게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 착한 여성의 이미지로 대통령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고 조신하게 처신한 덕분이었다. 박근혜의 신데렐라로 불리던 그는 그러한 처신이 오히려 부메랑이 되어 박근혜의 몰락과 함께하는 운명을 맞았다. 출세를 위해 권력자의 심기만 보좌한 비주체적 삶의 필연적 귀결이었다.

낸시 에스터는 미국 태생으로 영국 의회에 진출한 최초의 여성 의원이다. 보수당 소속이면서도 여성과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진보적 주장을 서슴지 않아 같은 당 최고 실력자였던 윈스턴 처칠을 곤란하게 했다. 여성의 참정권을 반대하던 처칠 수상에게 "당신이 만일 내 남편이라면 당신의 찻잔에 독을 넣고 말겠다"고 독설을 내뱉을 정도로 자기주장을 하는 당찬 여성이었다. 역사는 최고 권력자에게 당당히 맞섰던 그의 독설보다도 오히려 "당신이 내 아내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그 독을 마셔버리겠다"고 응수한 처칠의 유머(당신을 아내로 맞느니 차라리 그 독을 마시고 죽어버리겠다는 의미)를 더 기억하지만. 에스터는 현실에서 실현 가능한 타협적이고 점진적인 방법으로 변화를 이끌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모든 것을 변화시키려는 사람과 변화시키려 하지 않는 사람들의 간의 대립이다." 그가 남긴 유명한 말이다.
조윤선과 에스터는 정치권에서 유난히 강고한 유리 천장을 뚫고 자신들의 삶의 궤적에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를 덧붙인 정치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조윤선은 최고 권력자의 입맛에 따라 심기만 맞춘 비주체적 삶으로 일관하다 최고 권력자와 함께 몰락하는 운명을 맞았고, 에스터는 권력에 맞서 약자의 권리를 대변하는 소임에 주체적으로 충실함으로써 세계사를 빛낸 여성의 반열에 올랐다.

조윤선은 우리의 현재 모습이고 에스터는 거의 한 세기 전의 영국의 모습이다. 권력에 임하는 태도에서 우리나라와 영국 간에 거의 한 세기의 차이가 느껴진다.

양산부산대학교병원 교수,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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