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처음 접한 건 고입 연합고사를 앞둔 1978년 늦가을이었다. 한 친구가 저자인 조세희 작가가 자형이라며 그해 6월 출간된 이 소설을 읽어 보길 권했다. 도시 철거민과 공장 노동자의 신산스러운 삶을 다룬 이 소설은 당시에는 내게 절반의 공감만 남겼다. 부산 동구 초량동 산복도로 위 달동네에 살며 도시정비사업으로 집이 철거될 위기를 겪었던 터라 철거민의 아픔에는 동병상련의 정이 들었지만 노동자 이야기는 멀게 느껴졌다. 소설이 지닌 사회적 의미와 무게를 가늠한 것은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였다. 그때부터 이 소설은 '난쏘공'이란 약칭으로 머릿속에 새겨졌다.

그랬던 난쏘공을 최근 다시 읽었다. 초판을 발행한 지 39년 만에 300쇄를 찍었다는 소식을 듣고서였다. 문학 작품으로는 300쇄 돌파가 처음인 데다 지금까지 판매 부수도 137만 부에 이른다니 가히 고전의 반열에 오른 셈이다.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1970년대다. 작가는 "어느 날 재개발 지역에 가 철거반과 싸우고 돌아오다 작은 노트 한 권을 사서 '난장이 연작'을 쓰기 시작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리 오랜 세월 독자를 끌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특유의 소설 미학에서 비롯된 점도 있을 게다. 동화적이고 시적인 문체에다 과거와 현재, 사실과 비사실이 자유로이 섞이고 어우러지는 구성 형식은 비길 데 없이 아름답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소설의 독자 흡인력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문학 외 사회경제적 요인은 없을까. 실제 그 동안 재개발이나 주거환경개선지구에서 소설처럼 원주민이 쫓겨나는 사례가 많지 않았던가. 난쏘공을 읽은 철거민을 만나 소설과 현실을 넘나들며 이야기하다 보면 뭔가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만난 북구 만덕5주거환경개선지구 철거민 최수영(51) 씨의 첫인상은 가슴 먹먹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깡마른 몸에 혼자 계단을 오르내리지 못할 정도로 걸음이 부자유스러웠고, 이도 많이 빠져 볼이 홀쭉했다. 실제 키는 170㎝가 넘어 보였지만 병약함 때문에 키 117㎝, 몸무게 32㎏인 난쏘공의 난쟁이를 연상케 했다. 만덕5지구 사업시행자인 한국토지주택공사, 부산시 등과의 6년에 걸친 싸움이 가져온 후유증이었다. 그 와중에 2012년 엉덩이뼈가 부러져 보행 불편으로 이어졌다.

1600여 만덕5지구 원주민은 돈을 더 내지 않고 아파트에 입주할 수 없다면 사업을 취소해 달라고 주장하며 처절하게 싸웠다. 평당 350만 원에 불과한 보상금으로는 평당 730만 원에 달하는 신축 아파트 매입이 불가능해서였다. "주거환경개선사업은 원주민의 주거를 안정시키는 국책사업인데, 원주민은 쫓겨나고 돈 있는 외지인이 들어와 산다는 게 말이 됩니까?" 최 씨는 "토지주택공사가 제출한 국감 자료를 보면 서울을 제외한 전국 지방 도시 사업지구들의 원주민 평균 정착률이 14.9%에 불과하고, 만덕5지구에 앞서 시행한 만덕3지구는 그보다 낮은 13%"라고 실태를 설명했다. 난쏘공 속 재개발지인 서울 낙원구 행복동과 닮은꼴이다. 그는 "20세 무렵 난쏘공을 읽었는데, 지금까지 변한 게 하나도 없다"고 푸념했다.

최 씨는 지난해 4월 13일 10m 높이의 철탑에 홀로 올라가 31일간 철거 저지 농성을 벌였다. 철탑에서 내려온 그는 '만 가지 덕이 깃든' 만덕동에서 쫓겨나 금정구 선동으로 이주했고, 그의 집을 마지막으로 철거는 끝났다. 최 씨가 삶터에서 밀려난 일은 또 있었다. 결혼한 해인 1991년 부산진구 양정동 판자촌에서였다. 1983년 고향인 경북 풍기에서 부산으로 내려와 굴착기 기사 자격증을 딴 이듬해 둥지를 튼 곳이었다. 만덕동에선 14년간의 월세, 전세살이 끝에 겨우 26평짜리 내 집을 장만했었다. 최 씨의 인생은 부산 철거민 고난사의 축소판이다. 난쏘공 시대나 지금이나 도시 빈민의 '뿌리 뽑힌 삶'은 여전하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이런 불행을 잉태한 사업지구가 부산 181곳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2241곳에 달한다. 사정이 이러니 어찌 난쏘공이 스테디셀러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

"달에 가 천문대 일을 보기로 했다. 내가 할 일은 망원 렌즈를 지키는 일이야. 달에는 먼지가 없기 때문에 렌즈 소제 같은 것도 할 필요가 없지." 삶에 지친 난쟁이는 달 여행을 꿈꾼다. '어린 왕자'를 만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틈만 나면 벽돌공장 굴뚝 위에서 달을 향해 종이 비행기를 날린다. 그 꿈을 담은 작은 공을 온 힘을 다해 하늘로 쏘았지만, 공은 대기권을 벗어나지 못한 채 죽음으로 추락하고 만다. '낙원'구 '행복'동에서 영원히 추방된 것이다. 그러나 최 씨는 결코 도피 따위는 생각지 않는다. 이 점에선 난쏘공 시대보다 희망적으로 진화했다고 할 수 있겠다. "꼭 만덕동으로 돌아갈 겁니다. 가서 철거 전처럼 평상 하나 내놓고 이웃들과 밥도 나눠 먹고 도란도란 이야기꽃도 피울 겁니다." 그의 꿈이 반드시 이뤄지리라 믿는다. 이 넓디넓은 지상에 어찌 평상 하나 놓을 자리가 없겠는가.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