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을 넘기는 소리는 참 좋다. 종이가 크고 가볍기 때문에 넘기는 소리가 경쾌하다. 검지로 까딱까딱 클릭하는 인터넷 매체를 검색하는 소리와는 차원이 다른 설렘이 있다. 아침을 깨우는 상쾌한 소리이다. 마치 어머니가 아침 식사를 위해 도마를 두드리는 소리와도 같다. 시각적 매체인 신문에서 이러한 청각적 유희를 느끼는 재미가 날마다 쏠쏠하다.
서울대 경영학과 명예교수이며, 다소 상반된 분야의 전기공학 박사 학위도 취득한 윤석철 교수는 그의 저서 '삶의 정도'에서 인간 능력은 유한하므로 자기 능력 한계를 확장할 수 있는 도구가 필요한데 이를 수단 매체로 명명했다. 그 종류로 지식이나 지혜를 예로 들었으며, 사회적 수단 매체도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수단 매체가 아무리 훌륭해도 그것을 활용하여 어떤 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 목적 함수가 없다면 수단 매체는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의미 있는 목적 함수는 부단한 자기 수양과 미래 성찰을 통해 축적된 교양과 가치관의 결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는 목적 함수가 정립되었다면 이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수단 매체를 우회 축적의 방법으로 형성하고 축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 개인뿐만 아니라 이 사회도 의미 있는 목적 함수를 공유하고 이를 이루기 위한 수단 매체를 발전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특히 신문은 한 사회의 의미 있는 목적 함수를 달성하기 위한 유용한 수단 매체로서 그 역할을 담당해 왔다. 1960년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김주열 학생의 시신 사진이 실린 신문은 대규모의 학생들과 시민들의 각성을 이끌어 냈다. 정치적 사건뿐만 아니라 사회의 각종 부조리와 문제점을 고발하면서 수단 매체로의 자기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신문은 역사의 현장에서 중요한 순간마다 진실을 알리고 수많은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언로의 기능을 담당해 왔다.
그런데 현재 신문은 새로운 위기를 맞게 되었다. 인터넷매체와 가짜 뉴스가 그 상대이다. 기자 출신으로서 일본 마이니치 신문사 사장을 역임했던 우타가와 레이조(歌川令三)는 2005년 '신문이 없어지는 날(草思社)'이라는 책에서 2010년대에는 일본의 신문들이 붕괴되고 2030년에는 완전히 사멸할 것으로 예측했다. 인터넷이 신문을 대체할 것으로 본 것이다. 현재의 시점에서 보면 그의 예견은 빗나갔다. 그러나 위기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다. 신문을 둘러싼 환경이 점점 악화되고 있는 작금의 상황을 보면 더욱 그렇다.
이와 더불어 인터넷 매체를 통해 확산되는 가짜뉴스는 신문의 위기를 설상가상의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지난 3월 20일 보도된 '가짜뉴스 경제적 손실 연 30조900억 원' 기사는 우리를 더욱 놀랍게 한다. 가짜 뉴스로 인해 입을 수 있는 손실을 경제적으로 환산한 시도가 재미있다기보다는 그 규모의 엄청남에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신문이 살아나가는 방편은 취재력을 높이는 것이다. 신문의 뉴스 취재력은 다른 미디어에 비해 단연 압도적일 수 있다. 심도 있게 취재하고 알기 쉽게 전달하는 기자들의 힘겨운 노력이 가짜 뉴스로 혼란스러운 독자들에게 명쾌한 사실을 전달해 줄 수 있다. 진실을 파헤치려는 치열함이 신문 뉴스를 통해 알기 쉽게 전달될 때 다시 독자들은 신문을 우리 사회의 가장 강력한 수단 매체로 인정하게 될 것이다.
14세기 영국 잉글랜드 서리의 오컴이라는 마을에서 태어난 수도사이자 철학자인 윌리엄이 우리에게 던져준 교훈 '오컴의 면도날' 이론이 생각난다. 어떤 사실이나 현상에 대한 설명들 가운데 논리적으로 가장 단순한 것이 진실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는 어떤 현상의 인과 관계를 설정함에 있어 불필요한 가정을 삼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문 기사의 명쾌한 전달력은 어디까지나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 추측성 기사가 아닌 진실에 대한 치열함을 바탕으로 한 기사가 필요한 것이다.
가까운 이의 SNS를 통해 쉽게 받아보는 뉴스가 가짜일 때, 우리는 인간관계에 대한 진실함마저 잃게 될까 두렵다. 또 가짜가 진짜와 섞여 범람하는 세상에서 진실을 가려내는 혜안을 잃을까 두렵다. 사회의 성찰과 발전을 가능케 하는 수단 매체로서의 신문의 역할이 더 중요해진 시점이다. 대선 정국 속에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가짜 뉴스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신문을 넘기는 경쾌한 소리처럼 신문 기사도 독자들의 마음을 경쾌하게 울려 주기를 기대한다.
부산발전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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