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후보들은 '일자리' 창출에 우선순위를 둔 공약을 앞다퉈 쏟아내고 있다. 자원조달 방안이 결여된 '포퓰리즘성 공약'에서부터 언 발에 오줌 누기식 공약까지 망라됐다. 대통령 탄핵이란 사상 초유의 사태로 치러지는 이번 대선은 공약 검증기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만큼 공약(空約)을 걸러내기 어려워졌다.
지난해 실업자가 사상 처음으로 100만 명을 돌파하면서 고용대란은 이미 현실화됐다. 이 같은 현실 앞에 어쭙잖은 일자리 정책으로 대란을 헤쳐나갈 생각을 해서는 안 되고, 그럴 수도 없다.
핵심은 '먹고사는' 문제다. 이는 결국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다. 또 국가경제 선순환의 축이기도 하다. 따라서 새 정부의 경제정책 성패는 '괜찮은 일자리' 창출에 좌우된다. 그러나 상황은 녹록지 않다. 경기회복 전망은 불투명하고 위축된 기업들은 재투자 계획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제조업 경쟁력도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 일자리에 어떤 파고를 몰고 올지는 아직 예측조차 어렵다.
심각한 것은 10%를 넘어선 청년 실업률이다. 취업을 위해 졸업을 연기하고, 온갖 자격증으로 중무장해도 수백 대 일의 경쟁을 뚫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100곳에 이력서를 제출해도 취업하지 못한 청년이 수두룩하다. 일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들은 '희망'이란 단어조차 잊어가고 있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다 보니 결혼을 포기하고, 저출산 고령화 문제를 심화시키는 악순환의 고리로 연결되고 있다.
2016년 기준 32.8%로 전체 임금근로자 중에서 약 1/3에 달하는 비정규직 근로자는 또 어떤가.
역대 정권은 집권 초반 일자리 창출에 대한 장밋빛 청사진을 발표했다. 하지만 예외없이 일자리 목표를 달성하는 데 실패했다. 이번 대선에서 후보들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진일보한 공약도 내놓았지만 '세금 일자리' 공약도 여전하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공공부문 일자리 81만 개를 창출하는 등 정부 주도로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복안을 제시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민간에 일자리 창출을 맡기되 정부는 고용 친화적인 신산업 육성으로 좋은 일자리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청년 1인당 월 50만 원, 연간 10만 명을 지원하는 '청년 고용 보장제'도 약속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해외진출 기업을 국내로 유턴시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입장이고,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는 중소기업 창업벤처 환경을 조성해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구상을 드러냈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근로시간을 줄여 민간부문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문제는 실천이다. 선거 때마다 남발된 '공약(空約)'에 만성이 된 국민들이 후보들의 공약을 100% 믿는 것은 아니다. '새 정부라고 별수 있겠느냐'는 자조 섞인 냉소도 보낸다. 그렇지만 기대감도 적지 않다. 희망을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긴 불황의 터널을 벗어나는 조짐을 보이고, 우리 경제도 수출이 반등세를 보이는 등 대내외적 여건 변화가 감지되고 있는 것도 기대감의 한 자락을 잡고 있는 듯하다.
이 같은 기대감이 '희망 고문'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100만 명을 훌쩍 넘어선 실업자와 벼랑 끝에 몰린 취준생들, 그리고 그 가족들에게 일자리는 그만큼 절박하다. 공약과는 별개로 다음 정부가 일자리를 해결하지 못하면 국민적 불신에 직면할 것이다.
하지만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라는 근본적인 해법보다는 재원조달 방안도 불확실한 재정 투입이나 구체성 없는 정책을 통한 일자리 창출은 현실성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기도 어렵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 위주의 노동시장을 그대로 두고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통한 청년실업 해소가 정말로 가능할까. 이미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 노동시장의 경직된 구조로 인해 경제성장률에 비해 고용창출 파급효과가 떨어진다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정부 주도로 재정을 투입한 일자리 확대는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이미 입증됐다. 화려한 수사 대신 노동개혁에 정면승부를 걸 때다. 누가 당선돼도 '여소야대'인 다음 정부가 이를 추진할 수 있을까. 그래서 통합의 정치가 절실하다. 미래세대들을 위한 당선인의 결단을 기대해본다.
서울본부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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