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논어에서 향원(鄕原)을 덕(德)의 적이라고 하였다. 공자가 덕의 적이라고 한 향원은 어떤 사람일까. 이에 대해 맹자는 "그들은 말이 또 얼마나 번드르르한가! 말은 행동을 돌아보지 않고 행동은 말을 돌아보지 않으면서도 입만 열면 옛 성인을 운운한다. 그 행동이 또 얼마나 그럴듯한가! 사람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지금 세상을 위해 좋은 것이 좋은 것 아닌가! 라는 태도로 은밀히 세상에 영합하는 자가 바로 향원이다"고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조기 대선이 결정되었고 이제 투표일이 임박하여 각 후보자의 선거운동이 한창이며 스탠딩 토론으로 서로 치열한 공방까지 벌어지고 있다. 대통령은 국정의 최고책임자이고 우리나라를 이끌고 가야 하는 자리이다. 대통령이 가져야 하는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사람에 따라 우선시되는 것들이 다르겠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어느 방향으로 우리나라를 이끌고 나가겠다고 하는 방향의 제시 즉 비전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전의 대통령들도 박정희는 '잘살아 보세'로 일컬어지는 조국 근대화를, 전두환은 '정의사회 구현', 노태우는 '보통사람의 시대' 등등을 나아갈 바로 삼았다. 물론, 어떤 의도로 이러한 말들을 하였는지는 차치하고 적어도 겉으로는 자신들이 어디로 가겠다고 하는 간판을 달고 있었다.

비전은 항해하는 배의 목적지와 같은 것으로 비전이 없으면 배가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 몰라 표류하게 된다. 복잡하고 빠르게 변하는 현대사회에서 정확한 목표를 잡고 전력으로 달려도 목적지에 다다르기 어려운 상황에서 목적지도 모르고 표류한다는 것은 배를 좌초시키는 것과 같다. 빠르지 않더라도 천천히 간다면 목적지 가까이라도 갈 수 있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몰라 물결 따라 바람 따라 이리저리 휩쓸려 다닌다면 우리가 가야 할 곳, 가고자 하는 곳에 결코 다다를 수 없다. 그런데 이번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대선 후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도대체 그들이 우리나라를 어디로 이끌고 가려고 하는지를 알기 어렵다. 물론 겉으로는 모두 우리나라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듯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어떻게든 표만 얻으려고 할 뿐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과연 우리나라를 어디로 데려가려고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자신들이 제시한 공약을 아침저녁으로 손바닥 뒤집듯이 바꾸고 이런저런 변명을 하는 것을 탓할 생각은 없다. 상황이 달라지면 공약도 변하여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는 처음에는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다고 생각하여 길을 나섰지만 가는 길에 여러 가지 예상하지 못하였던 암초들을 만나면 가고자 했던 길을 수정하여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러한 공약의 변화도 자신이 가고자 하는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하여 상황의 변화에 따라 바꿀 수 있다는 것이지 목적지도 없이 그저 표만을 얻기 위하여 이런저런 공약을 바꾸어서는 안 된다. 즉 모든 공약은 자신이 제시한 비전에 합당해야 하고 공약의 변경이 있을 경우라도 이러한 목적에 더욱 부합하기 위해 수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자가 한 가지로 꿰어야 된다는 일이관지를 말하였는데 대선 후보들도 자신이 제시한 비전에 모든 공약이 맞게 일이관지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요즈음 대선후보들의 공약을 보면 과연 그들이 어떤 지점으로 우리나라를 이끌고 가려고 하는지를 알 수도 없고, 자신들의 약속하였던 것을 쉽게 뒤집는 것을 보면 어떠한 원칙에서 그렇게 하는지도 알 수 없다. 오히려 득표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이제까지 자신들이 청산의 대상이며 혁신의 대상으로 여겼던 사람들의 주장도 포함하는 행동도 스스럼없이 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에서 발간한 책에는 선비가 사회적 위치를 이용해 사리사욕을 추구하고 선비의 본무(本務)인 사회정의의 실현에는 아무 관심이 없는 사람이 '사이비 지식인' 즉 향원이라고 한다. 지금 보자면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고 국가의 장래니 비전이니 하는 것을 내팽개치고 한 표라도 얻으려고 이때까지 자신이 한 말과 모순되는 말과 행동도 거리낌 없이 하는 사람이 향원일 것이다. 과거의 대통령이나 지금 대통령이 되고자 나선 사람들도 이에 가까운 사람이 여럿 있는 듯하다. 자신의 신념과 비전만으로 국민을 설득시킬 수 없다면 물러나면 될 것이고 그럴 자신이 없는데도 오로지 대통령이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말을 바꾸고 공약도 바꾼다면 이는 자신을 위해서나 국민을 위해서나 나라를 위해서나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이번 대선에는 누가 제대로 된 비전을 가지고 이를 실현할 의지가 있는지를 살펴보고 투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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