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판에 때아닌 회고록 논쟁이 한창이다. 보기 드문 풍경이다. 역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런 적은 없었다. 외국에서도 이런 일이 있다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급박하게 치러지는 대선에서 펼쳐지는 기형적인 논쟁이다. '미래'는 사라지고 '과거'만 돋보인다. 한마디로 '회고록(回顧錄) 대선'이다.

물론 과거는 중요하다.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기 위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면 특히 그러하다. 그랬을 때 과거는 현재로 살아난다. 이렇게 되면 그것은 더는 과거가 아니다. 움직이며 미래로 이어지는, 살아 있는 현재이다.

그러나 나아감이 없이 과거에 머문다면 그것은 생산성 없는 공론(空論)에 불과하다. 계속되는 여야 후보들의 공방과 TV토론회는 이런 측면에서 아쉬움이 크다. '과거'에 너무 집착하고 있다.

대선 정국 초입에 회고록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회고록이었다. 그는 지난 4월 3일 발간한 회고록에서 "군인이 시위대에 희생됐기 때문에 자위권 발동 차원에서 발포했다" "광주사태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대통령이 됐다는 것이 원죄가 됨으로써 그 십자가는 내가 지게 됐다"라는 따위 어처구니없는 말을 쏟아냈다. 부인 이순자 씨도 지난 3월 24일 낸 회고록 '당신은 외롭지 않다'에서 "우리 내외도 사실 5·18사태의 억울한 희생자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참회록을 써도 시원찮은 사람들이 변명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대선 후보들도 이에 가세했다. 권력 공백기를 틈타 자기 합리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질타였다.

'전두환 회고록' 파문이 가라앉기도 전 이번에는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가 대선판을 흔들었다.

이 책에서 송 전 장관은 2007년 유엔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을 표결하기 전에 노무현 정부가 북한에 먼저 물어본 뒤 반대 의사를 확인하고 표결에 기권했다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있던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주도적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문 후보는 "사실과 다르다. 제2의 북풍공작이다"라고 강하게 반박하며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과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의한 법률 및 공무상 비밀누설죄 등의 혐의로 송 전 장관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송민순 회고록'으로 문 후보가 융단폭격을 당하던 시점에 이번에는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의 자서전 파문이 터졌다. 홍 후보가 2005년 자서전 '나 돌아가고 싶다'에 쓴 '돼지흥분제 이야기'가 문제였다. '하숙집 동료가 짝사랑하던 여대생을 자기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흥분제를 구해달라고 부탁해 구해줬다. 동료가 여대생에게 흥분제를 먹이고 강제로 성관계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절대 그런 일에 가담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게 대략적인 내용이다. 홍 후보는 당시에 들은 이야기일 뿐 자신은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거짓말을 하고 있다. 대통령 후보로서 자격이 없으니 사퇴하라"는 요구가 이어졌다.

회고록은 기본적으로 주 무대가 과거이다. 쓴 사람은 100% 사실만을 기록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자신의 관점에서 쓴 것도 사실이다. 그러하기에 진실을 분명하게 드러내기에는 한계가 있다. 더구나 지금 같은 격변기에는 정치적 입장 차에 따라 보는 시각이 판이하게 갈린다. 사실이지만 진실은 아닐 가능성이 있다.

선거에서 '과거 논쟁'이 격렬해질수록 역설적으로 이득을 보는 것은 1위 후보이다. 다른 후보들은 1위 후보에게 타격을 주기 위해 논쟁을 촉발하지만 '진흙탕 싸움'은 '다 똑같아!' 심리 속에 '될 것 같은 사람을 밀어주는' 흐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강한 지지층을 가진 후보들이 이런 국면에서는 지지도가 올라간다. 판을 바꾸기를 노리는 후보라면 '과거'가 아니라 구도와 프레임을 바꾸는 데 집중해야 한다.

'회고록 대선'은 우리 사회의 산적한 현안에 대한 해법을 찾기보다는 상대에 대한 네거티브에 집중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물론 이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정도가 지나치다. 저출산, 고령화, 청년 실업, 가계부채, 경제 살리기, 재벌 개혁, 검찰 개혁, 정치 개혁, 4강 외교…. 숱한 과제는 토론회에서 그저 스쳐 지나간다.

대통령 후보들이 모였는데 수준 높은 담론이 오가거나 해법을 진지하게 모색하는 모습은 간데없고 날카로운 공방만이 오간다. 누가 대통령이 되건 미래가 걱정되는 우울한 날들이다. 이런 염려가 기우에 그쳤으면 좋겠다.

시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