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8시간, 주 36시간 노동이 지향해야 할 미래 노동의 이상향으로 그려졌던 때가 있었다. 오늘날은 완전히 다르다. 시원한 바닷가에 편안히 앉아 노트북을 무릎에 놓고 일하는 창의적인 지식노동자, 컴퓨터 애플리케이션으로 원하는 작업 스케줄을 계획하는 생산직 노동자가 현재 우리의 이상향이다." 독일 연방정부가 만든 '노동 4.0' 백서 서문의 일부다. '노동 4.0'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노동체계를 말한다.
독일은 '저녁이 있는 삶'을 사는 대표적인 나라다. 퇴근 후 바로 귀가한 가장이 가족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풍경은 일상이 된 지 오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중 가장 짧은 노동시간(2015년 1371시간)이 그 원동력이다. 우리나라는 같은 해 2113시간으로 독일보다 742시간(30.9일) 더 길다. 독일이 '하루 8시간, 주 36시간 노동'을 지향했던 건 '노동 3.0' 시대(1970, 80년대)였다. '노동 4.0' 시대로 진화한 독일과 달리 우리는 아직 '노동 3.0' 시대의 언저리를 맴돌고 있다.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다 보니 과로사가 속출한다. 지난해 2월부터 1년간 9명의 우체부가 근무 중 숨졌다. 게임업계의 노동강도도 악명 높다. 최근 한 업체가 8개월간 강제 야근과 휴일 없는 근무 등 살인적 노동을 시도하다 비난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하루에 20시간 넘는 노동을 부과하고 두세 시간 재운 뒤 다시 현장으로 노동자를 불러내는 삶을 더 이어가긴 힘들었다." 지난해 10월 이런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CJ E&M 이한빛 PD를 통해 드러난 방송계 외주업체의 노동현실 역시 눈물겹다. '과로사회'의 슬픈 자화상이다.
'비정규직 휴가권 보장(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퇴근 후 출근까지 11시간 이상 최소연속휴식시간 보장(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단계적으로 주 35시간 근로시간제 추진(심상정 정의당 후보)' '노동시간 단계적 단축(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대선주자마다 과로사회의 해법을 내놓았지만 경제계의 강한 반발이 예상돼 실현을 장담하기는 어렵다.
"노동은 우리가 이제껏 너무 많이 한 것이 아닌가/우리 노동을 폐지하자/일은 재미일 수 있다/우리 노동을 그렇게 하자/우리 재미를 위한 혁명을 하자!" 영국 작가 D.H. 로렌스의 '제대로 된 혁명' 시구가 하느님 말씀처럼 들리는 나날이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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