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비서동은 2004년 12월 노무현 대통령 시절 오늘의 모습을 갖췄다. 기존 청와대 비서동 옆에 있던 온실을 증개축해 여민(與民)1관으로 이름짓고 대통령 집무실도 만들었다. 이전까지 비서동은 두 개였지만 1관이 완공되면서 여민 1~3관으로 나뉘어졌다. 비서동에 추가로 집무실을 만든 것은 대통령과 핵심 참모들이 모여 일하는 미국 백악관의 웨스트윙(서쪽 별관)을 본땄다. 여민이란 이름엔 맹자에 나오는 여민동락(與民同樂·백성과 고락을 같이함)의 뜻이 담겼다.

여민관의 목적과 의미가 어떻든 당시 한나라당은 상당히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경제도 어렵다는 판에 47억 원이나 들여 새 건물을 짓는 게 온당하냐고 딴지를 건 것. "참모가 아니라 국민의 소리를 들어야 할 때다. 청와대의 성도 모자라 여민관의 성을 쌓았으니 그 사치와 낭비에 국민들은 통곡할 지경이다. 여민관은 또 하나의 성이 아닌가"라며 맹공을 퍼부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명박 정부는 집권 후 비서동 이름을 백성을 위한다는 위민(爲民)관으로 바꿨고 박근혜 정부에서도 이를 유지했다.

하지만 이명박과 박근혜 전 대통령은 위민관을 별로 이용하지 않았다. 이는 결국 탄핵 정국에서 참모진과의 불통 논란으로 이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일상적인 주요 업무를 비서동에서 보기로 한 배경이기도 하다. 이뿐 아니라 이름도 노 전 대통령 시절의 여민관으로 되돌렸다. 지난 13일 오전 브리핑에서는 위민관을 유지하겠다고 했다가 오후엔 여민관으로 바꾸기로 정정 발표를 했다.

국민을 위한다는 위민은 정부가 주체이고 국민은 객체라는 의미라는 게 청와대 설명이다. 반면 여민은 국민을 객체가 아닌 함께할 동반자로 여긴다는 뜻을 담고 있다는 것. 실제 흔히 말하는 위민사상은 나라의 주인이 군주라는 왕권중심 사상이 깔려 있어 맹자의 여민동락 정신과는 구분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어쨌든 문 대통령이 국민에게 한 걸음 더 다가서겠다는 의지를 보였다는 점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한 건물을 두고 10여 년 새 여민과 위민을 왔다갔다 하는 게 그다지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다. 물론 비서동 이름을 위민으로 바꾼 이명박 정권이 단초를 제공했지만 굳이 여민으로 되돌린 것 또한 취지와는 달리 불필요한 오해를 살 여지가 있다. 백악관 웨스트윙은 무미건조한 이름에도 오랫동안 소통의 상징으로 남아 있지 않은가.

장재건 논설위원 jj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