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좀 다녀오셨어요? 황금연휴의 끝머리, 만나는 사람들의 인사가 그랬다. 4월 말부터 5월 9일 대선까지 징검다리로 이어진 휴일들. 세어보니 11일 중에서 8일이 휴일이었다. 여가는 한국인에게 중요한 일상이 되었다. 하지만 특정 연휴를 중심으로 왕창 움직이는 여행은 몸도 마음도 피곤하다. 한꺼번에 수요가 몰리니, 정작 내가 가려는 여행지는 성수기가 아닌데 성수기 비용을 치러야 하는 모순까지 생긴다.

많은 사람이 연휴 동안 해외여행을 떠났다. 국내 여행은 일상이 되었고 해외여행도 한 번 이상 가본 사람이 지천이다. 해외여행. 무엇이 우리를 당기는 걸까? 우선은 이국 문화에 대한 호기심을 꼽을 수 있다. 늘 보던 것과 다른 풍경과 다른 사람. 안전이 보장된다면 일상 밖으로의 일탈도 나쁠 것 없다. 처음에는 단체여행 중심이었지만 이제는 자유여행이 대세. 그래도 상당수 여행은 여전히 붕어빵 꼴이다. 다른 사람이 갔던 길을 '검색'해서 따라갈 뿐이다. 큰 모험을 하지 않더라도 더욱 색다른 건 없을까? 그런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게 태국의 송끄란과 미얀마의 띤장이다.

둘 다 물 축제지만 관광객을 위한 배려나 꾸밈은 거의 없다. 그들의 문화에 외국인을 끼워줄 뿐이다. 이 물 축제는 대개 4월 13일에 시작되어 16일에 끝난다. 3박 5일이나 4박6일 여정에 딱이다. 연도별 계산법에 따라 12일에 시작되는 해도 있다. 미얀마에서는 물 축제가 끝나는 4월 17일이 새해 첫날이다. 우리로 치면 설날을 앞두고 온 국민이 신나게 물세례를 주고받는 것이다.

태국의 송끄란은 띤장에 비해 많이 알려져 있다. 태국은 동남아시아의 중심. 국민소득도 주변국들보다 높아 기념 퍼레이드도 많고 물 축제 도구도 상업용 물총이 주종이다. 하지만 미얀마는 아직 가난한 나라. 이 나라의 물 축제는 거의 민낯이다. 축제일이 다가오면 덮개 없는 트럭들이 총출동한다. 대나무나 끈을 묶어 탑승객의 손잡이를 만든다. 길가의 분위기도 비슷하다. 커다란 물통마다 물을 받아두고 발사용 호스나 물그릇을 준비한다.

축제의 날이 밝아오면 트럭들이 일제히 출정한다. 그 트럭에는 사람들로 초만원이다. 손잡이용 대나무나 끈 외에 안전장치는 전무하다. 거기서 물을 뿌리고,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달린다. 이방인의 눈에는 위험천만해 보이지만 그들은 뾰뾰(행복)하다. 누구든, 어떤 차량이건 지나가기만 하면 서로 축복을 나눠준다. 더러 그럴듯한 물총을 가진 사람도 있지만 집에서 쓰던 막그릇 같은 게 압도적이다. 물세례를 받으면 춤을 춘다. 너무 젖어 추우면 차에서 음료를 마시며 체력을 보충하기도 한다.

외국인도 예외는 없다. 거리에 나서기만 하면 원 없이 물벼락을 맞을 수 있다. 이방인에 대한 첫 물세례는 예고편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속된 말로 간을 보는 것. 맛보기가 끝나면 본격적인 투하가 시작된다. 처음에는 재미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살짝 피로감이 작렬할 수도 있다. 미얀마도 사람 사는 곳. 장난기 심한 사람이 없을 리 없으니 얼굴을 향해 발사하기도 하고, 양동이째로 들이붓기도 하는 까닭이다.

시내를 벗어나면 웅덩이의 물이나 고인 물을 퍼다 뿌리는 곳도 많다. 위생이라는 시각으로 보면 그 물은 절대 깨끗하지 않다. 오염된 물로 감염된다는 A형 간염이니 식중독이니 하는 걱정이 들 수 있다. 그런 우려는 예방접종으로 씻어내면 된다. 다만 여기에도 하나의 예외가 있으니 바로 스님들이다. 이분들에게는 물세례를 날리지 않는다. 미얀마에서 스님은 존경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해가 지는 여섯 시가 되면 축제는 약속처럼 끝난다. 물이 줄줄 흐르는 몸으로 움직이려면 조금 불편하다. 그 불편조차도 숙소에 돌아와 샤워를 끝내면 차곡차곡 추억이 된다. 꾸밈없이 리얼한 체험은 같은 여행이라도 체급이 다른 추억을 만든다. 돈 내고 참여하는 이벤트 성격의 체험이나 관광객을 위해 만들어놓은 붕어빵 체험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이번 황금연휴 동안 여행을 떠난 사람들은 어떤 체험과 재충전을 하고 돌아왔을까? 그렇게 보낸 시간이 활력이 되어 각박해지는 세태 속에 여유로 꽃피면 좋겠다. 그러고 보니, 이제 내가 떠날 차례다. 남들과 다르게 떠나는 여유. 반백수로 불리는 글쟁이에게 주어진 몇 안 되는 축복의 하나다. 흐음, 이번에 또 우리 사모님께 뭐라고 핑계를 댄다?

동화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