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초등학교 4학년 아들이 학교에 프로야구팀 NC 다이노스 모자를 쓰고 갔다. 친구들이 보자마자 "와… 니… 진짜 NC 다이노스 팬이가? 와…"라며 자신이 이상한 사람인 것처럼 말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위의 줄임표가 품은 감정을 이해할 수 있다.

'너는 부산에 살면서 어떻게 롯데 자이언츠가 아닌 다른 팀을 응원할 수가 있는 거니'라는 책망이다. 아들은 자신이 NC 다이노스 팬이 아니며 모자를 쓰고 싶은데 마침 그 모자가 잘 맞아서 쓴 것이라며 황급히 변명했단다. 얘기를 들으면서 '아이고. 이 어리고 귀여운 '롯빠'들을 어이할꼬'란 생각이 들어 심각한 아들을 앞에 두고 자꾸 웃음이 나서 참느라 힘들었다. 아버지나 어머니의 손을 잡고 사직야구장을 찾던 아이가 자라서 롯데 자이언츠의 팬이 되는 게 자연스러운 곳이 부산이니 이런 일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 일을 생각하며 혼자서 키득대다 오래전 텔레비전에서 본 해태 타이거즈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 화면이 떠올랐다. 중계 카메라가 관중석을 비추다 재미있는 거리를 발견했는지 멈췄다. 너덧 살 돼 보이는 남자아이의 스타디움 점퍼가 아주 독특했다. 삼성 라이온즈의 '三(삼)', 해태 타이거즈의 '태' 라는 두 글자가 점퍼 등에 선명했다.

부모 중 누구도 자신이 응원하는 팀을 양보할 생각이 없었던 거다. 점퍼 두 벌을 사서 반으로 자른 뒤 붙인 것인지, 등판에 자수만 다르게 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처음 봤을 때는 웃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그 부부는 아주 현명했구나' 싶었다. 각자의 취향을 존중하고, 아이에게도 강요하지 않은 거다. 아이의 NC 다이노스 모자 얘기를 남편에게 했더니 남편이 자신은 두산 베어스로 응원팀을 옮기겠다고 나섰다. 말로만 하는 얘기라는 걸 알면서 나도 모르게 "한 지붕 아래 두 개의 팀은 없다. 잘해도 못해도 그래도 롯데 자이언츠!"라며 그의 말을 일축했다. 남편은 그런 내 반응이 재미있는지 계속 롯데 자이언츠로 향해 있던 팬심을 거두겠노라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 나는 들을수록 발끈해서 "이 배신자! 부산에서 태어나서 롯데 자이언츠 팬이 되는 건 고칠 수 없는 배냇병 같은 거야!"라며 되지도 않는 공방을 계속했다.

그러다 문득 왜 남편과 내가 반드시 한 팀을 응원해야 하나 하는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다. 가족끼리 좋아하는 팀이 달라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데 말이다. 우리 가족의 애정이나 결속력이 각자 다른 야구팀의 팬이라는 사실 때문에 과연 영향을 받을까. 물론 약간의 섭섭함은 있을 수 있겠지만 그게 무슨 별일일까.

우리는 다양성이라는 말을 하면서 나와 남이 다른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배운다. 그리고 서로가 달라야 사회도 더욱 평등하고 다채로워진다고 다양성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정작 생활하면서는 여러 부문에서 다양성을 존중하기보다는 나와 같기를 바란다. 그래야 우리의 관계가 더 돈독해지고 편안하다고 느낀다. '취존'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취향이니 존중해 주시죠'라는 뜻이다.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지지하고 밝힐 권리가 있다. 하지만 그 대상이 '불호'라 하더라도 비난이나 차별을 담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다 다르다. 그게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겉모습도 생각도 같을 수가 없다. 그래서 아름답고 재미있다. 너와 나의 다름이 문제가 아니라 개성이므로 서로가 다를수록 좋은 일이다.

스포츠레저부 차장 jador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