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의 북한정책이 군사적 타격을 배제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보름 전 모든 제재와 압박을 가하되, 정권 교체를 추진하지 않고,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며,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4대 대북정책 기조에 공식 서명했다고 한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홍석현 미국 특사에게 밝힌 "북한 정권 교체를 안 하고, 침략도 안 하며, 체제를 보장한다"는 입장과 같은 맥락이다. '제재와 대화를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북핵의 완전한 폐기를 달성한다'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와도 별반 차이가 없다. 이로써 다음 달 말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의 최대 의제인 북핵 문제를 풀어나갈 대전제는 갖춰진 셈이다.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건 이미 개발된 핵무기를 스스로 폐기토록 하겠다는 말이다. 미국은 이를 위해 북핵 시설을 선제타격하는 초강수까지 검토했으나 이번에 마련한 4대 기조에선 이 옵션을 제외시켰다. 남은 수단 중 제재와 압박은 강도를 높여나갈 여지는 있지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공조를 통해 시행된 지 오래다. 아직 쓰지 않은 수단은 대화뿐이다.

그런데 대화는 의지만 가지곤 안 된다. 그럴 수 있다면 왜 북핵 문제가 20년 넘도록 해법을 못 찾은 채 악화일로를 치달렸겠는가. 중요한 건 대화할 수 있는 실질적인 여건을 만드는 것이다. 미국이 북한을 침략하지 않고, 체제를 보장하겠다면 믿을 수 있는 물증을 제시해야 한다. 제임스 레이니 전 주한 미국대사가 2003년 '포린 어페어스' 기고에서 피력한 '불가침 조약 체결' 주장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그는 협상을 하려면 먼저 북한의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에 사활을 거는 건 세계 최강국인 미국을 상대로 체제와 정권을 지키려면 그 길밖에 없다고 판단해서일 것이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이런 이치를 설명하고 긴장 완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그리해야 북한을 대화와 협상 테이블로 불러낼 수 있고, 우리와 미국이 종국적인 목표로 설정한 북핵 폐기 실현을 도모할 수 있다. 물론 실행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이게 합리적인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