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축구연맹(FIFA)이 주최하는 20세 이하(U-20) 월드컵이 열기를 더해가고 있다. 올해는 우리나라에서 대회가 치러져 축구 팬들의 관심이 더 쏠린다. 한국 대표팀은 조별 예선에서 2연승을 해 일찌감치 16강행을 확정 지었다. 당초 목표인 4강 진입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30일 포르투갈과의 16강전에서 이기지 못하면 여정을 마쳐야 한다.

근데 이상한 건 앞날이 이렇게 불투명한데도 축구 팬들의 기대감은 더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신태용 감독에 대한 믿음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한국은 지난해 10월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U-19 챔피언십 조별리그에서 예선 탈락했다. 개최국 자동 출전권이 없었다면 이번 U-20 월드컵에서 제대로 뛰기조차 힘든 실력이라는 이야기다. 한 달 뒤 새 사령탑에 오른 신 감독은 이런 선수들을 이끌고 6개월여 만에 전혀 다른 팀을 만들어냈다. 선수가 그대로인데 감독만 바뀌었다고 뭐가 되겠어라던 팬들의 비아냥이 쏙 들어가 버렸다.

'재미있는 축구'를 내세운 신 감독의 행보는 이전의 지도자와는 한참 다르다. 엄격한 규율과 통제 대신 어린 선수들에게 최대한 자율성을 부여해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리고 있다. 개인보다 팀이 우선이라는 옛 대표팀 모습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톡톡 튀는 이승우는 머리에 현란한 염색까지 했다. '지옥훈련'을 거쳐 1983년 멕시코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대회에서 4강 신화를 쓴 박종환 감독이었다면 지금의 대표팀을 절대 용납하지 않을 거라는 우스갯소리는 그래서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신 감독은 16강전에서 좌절할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짧은 시간에 대표팀을 탈바꿈시킨 그의 능력은 비난보다는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다.

이쯤 되면 각 분야에서 지도자가 가져올 수 있는 변화가 대체 얼마나 되는지가 궁금해지게 마련이다. 전년도 스포츠 리그에서 밑바닥을 기던 팀이 감독 교체를 통해 이듬해 절대 강자로 올라서거나 파산 직전에 몰린 회사가 새 사장 영입으로 재기에 성공하는 사례는 동서양을 통틀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범위를 넓히자면 국가 경영도 마찬가지일 터다.

대한민국의 국정 최고 책임자가 바뀐 지 20일이 됐다. 짧은 시간을 평가하는 시각은 천차만별이다. 어떤 이는 "과연"이라는 감탄을 하고, 다른 이는 "좀 더 두고 봐야지"라고 회의적인 시선을 던진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초반 점수는 일단 후하다. 한국갤럽이 지난 23일~25일 여론조사를 했더니 문 대통령이 '앞으로 5년간 직무를 잘 수행할 것'이라는 응답이 88%나 됐다. '잘못할 것'이라는 대답은 6%에 그쳤다. 대선 동안 자유한국당을 지지했던 층에서도 57%가 잘할 것이라고 전망을 했다니 놀랍기만 하다.

문 대통령 덕분인지 여당을 바라보는 평판도 좋다.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이 51%에 이르면서 처음으로 절반을 넘어섰다.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 등 야4당 합산지지도(27%)의 배가량 된다. 이런 까닭에 정치권에서는 1993년 3월과 6월, 김영삼 대통령을 배출한 민주자유당이 기록했던 역대 최고 정당 지지도 59%를 더불어민주당이 깰 가능성도 높다는 전망을 하고 있다.

집권 초기에는 어느 정도의 잘못은 덮어주자는 것이 유권자 정서. 이를 고려해도 이만한 수치는 기대 이상이다. 문 대통령을 바라보는 눈길이 이처럼 부드러워진 데는 여러 원인이 작용했을 법하다. 스스럼없이 국민들에게 다가가는 친근함, 스스로 몸을 낮추는 겸손함, 파격적인 인사, 합리적인 일처리 등은 이전의 대통령에게서는 잘 드러나지 않았던 부분들이다.

나중에 삼수갑산에 가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 우리나라는 지도자 교체가 가져다준 훈훈한 바람을 만끽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조금 말을 보태자면 뭔가 희망이 있어 보인다. 새 정권의 개혁 대상으로 몰린 일부에서 "세상이 이렇게 바뀔지 몰랐다"라는 푸념을 내놓는다지만 터무니없다. 그동안 가졌던 것을, 누렸던 것을 잃지 않으려는 세력의 넋두리나 다름없다.

문 대통령의 이런 모습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사실 아무도 알 수 없다. 집권 초기에 국민의 가려운 곳 긁어주겠다고 목소리 높이지 않은 대통령과 정권은 없었다. 시간이 지나 타성에 젖으면 초심을 버리는 게 사람이다. 집권 한 달이 채 되지 않는 대통령에 대한 지나친 지지도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편으론 곰곰이 생각하자니 지금 한국 사회는 세상이 달라진 게 아니다. 원래 그래야 하는 것들이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과정이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문 대통령이 잘하는 것은 별로 없다. 지극히 평범한 상식을 상식이 아니라고 덮어씌웠던 장막을 걷어내는 역할만 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도 이게 어딘가. 전임 대통령들이 못 했던 일을 척척 해내고 있으니 변화에 대한 기대도 조금씩 높아진다. 이게 지도자의 힘일 터지만, 제발 출마 때 가졌던 마음을 잃지 않기를.

논설위원 haore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