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선 기간 각 주요 정당 후보 모두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공약을 내놓았다. 조금씩 다른 시각에서 접근했지만 공통으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대비는 불가피한 상황이고, 개인과 국가 모두 준비가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4차 산업학명에서 거론되는 인공지능(AI)과 로봇,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등을 통한 새로운 융합과 혁신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음을 체감하고 있다. 대다수의 사람은 최근에 이슈가 된 사건들로 '4차 산업혁명'의 일부를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작년 여름 '포켓몬고'라는 게임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고 우리나라에서도 정식 서비스가 되기도 전에 플레이가 가능한 일부 지역이 관광명소가 되기도 하였다. 이는 증강현실(AR)을 이용한 것인데, 과거에는 현실과 가상현실이 철저히 분리되었다면, AR에서는 현실의 사물에 대해 가상의 관련 정보를 덧붙여 보여주는 것으로 불과 십수 년 전에는 상상에 머물렀던 미래 기술이 이제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그리고 작년 3월에는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세기의 바둑 대결 이후로 인공지능은 친숙한 용어가 되었다. 최근엔 세계 최고 바둑 챔피언 커제 9단마저 꺾은 뒤, 알파고는 바둑계 은퇴를 선언했다.

의학 분야에서는 이미 인공지능, 로봇기술, 생명과학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이 이미 의료 현장에 일부 도입되었고 앞으로도 여러 형태로 발전할 것으로 보인다. IBM의 '왓슨'은 의학 분야에서 가장 앞선 인공지능이다. 왓슨은 그동안 학자들이 정리해 놓은 290종의 의학저널, 200종의 교과서, 1200만 쪽에 달하는 전문자료를 학습했고 계속해서 업데이트 되고 있다. 현재는 주로 암 등과 같은 특정 질환의 진단과 치료법 결정에 도움을 주고 있다. 수술 로봇 '다빈치'는 의사가 환자 몸속의 영상을 보면서 로봇 팔을 작동해 수술한다. 현재까지의 왓슨과 다빈치는 스스로 의사결정 및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의사결정과 행위를 지원하는 방식에 중점을 두고 있다. 앞으로도 이러한 '의사결정 지원형 인공지능'은 의학 분야 내에서도 다양한 세부 영역에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AI의 영역이 의료계 전반에 확립되면, 전통적으로 의사가 하던 진단의 영역을 인공지능이 대신하는 시대가 오는 것이고, 의사들은 지식 기반의 단순 작업을 줄이고 환자를 중심으로 한 통합적인 연구와 진료를 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앞으로는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해 다음 수를 놓는 알파고와 같은 형태의 '자체 판단형 인공지능'이 의료계에도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AI가 로봇과 결합을 하면, 스스로 전반적인 진료과정에 개입하게 되고, 심지어 외과 수술도 하게 될 것이다. 머지않은 미래에 공상과학 영화에서만 보던 일들이 눈앞에 펼쳐질 것으로 기대가 되지만, 이에 따르는 부작용에 대해 우리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우리나라에 대해 많은 자문을 한 앨빈 토플러는 이미 오래전부터 사회적 변화 없이는 과학기술 혁명의 이익을 충분히 누릴 수 없다고 지적했다. 4차 산업혁명은 지능과 연결, 공유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수직적 위계질서 문화와 암기 위주의 교육은 4차 산업혁명의 큰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따라서, 그의 자문처럼, 우리나라는 교육체계의 변화와 공공 부문의 개혁이 함께 이루어져야 4차 산업혁명으로 순조롭게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아직 4차 혁명이 전반적으로는 본격화되지 않았지만, 적어도 의료계는 그러한 길로 들어간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의료계의 4차 산업혁명 또한 AI, 로봇, 사물인터넷 등 기술 혁신 중심으로 접근해서는 안 될 것이다. 환자의 삶을 개선하는 데 일차적 목표를 두어야 할 것이고, 의료계 종사자들에게는 이를 대비한 교육환경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해운대백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