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부산 북부교육지원청에서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을 모시고 '민주적 학교문화'를 주제로 워크숍을 개최했다. 경기도에 있는 교장 선생님을 강사로 초청했는데 강연 내용이 알찼고 우리가 나가고자 하는 교육 방향과도 잘 맞았다. 다만, 교장·교감을 지칭하는 용어에 관한 이견이 있었다.

초청 교장 선생님이 근무하는 경기도에서는 '학교관리자'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학교행정가'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학교관리자'라는 용어가 '학교를 일정 기간 맡아 사무를 처리'하는 정도의 소극적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어 사용하지 말자는 견해에 필자도 누누이 강조해왔던 터라 반가웠지만 '학교행정가'로 대체하는 데는 동의하기 어려웠다.

세계 최대의 교육 도움 센터인 'Learn.org'에는 '학교 리더는 학생들과 지역 공동체 사이에서 중요한 연결점의 역할을 해야 한다(A school administrator's specific responsibilities differ between organizations, but often these administrators are an important link between students and local communities)'고 강조하고 있다. 최근 마을공동체 교육이 조명을 받으면서 여태껏 공문서 등에서 '학교관리자'로 번역해 사용하던 'school administrator'를 특정 학회 등에서 '학교행정가'로 새롭게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행정(行政)의 사전적 의미는 '정치를 행하는 것'이고, 법률에 좇아서 정무(政務)를 집행하는 행위로 풀이되고 있다. 그러므로 '행정가'라는 용어로 교장·교감의 역할을 담아내는 것은 따뜻한 학교공동체를 지향하는 우리 정서에 맞지 않다.

단위 학교의 자율경영 체제로 변화되는 현시점에서 '학교관리자'를 대체하는 용어로는 '학교경영자'가 더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다소 마음에 걸리는 문제는 '경영자(經營者)'라는 말을 교장·교감에게 붙여 부르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다. 관용적으로 '경영자'는 '기업주' '사업주' 등을 상징하며 일부 부정적 이미지가 있다.

그러나 축자적(逐字的)으로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경(經)'에서 '사(糸)'는 실타래를, '경(巠)'은 위아래의 수평선 사이에 수직선 세 개를 그려 천을 짜는 직조기의 모양을 형상화했다. 후한 학자인 허신(許愼)의 '설문해자(說文解字)'에도 '경(經)'은 베틀에서 세로 방향으로 놓인 '날실'을 의미하고 씨실을 의미하는 '위(緯)'에 상대되는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베를 짤 때 날실과 씨실이 서로 교차하며 결합해야 한다. 날실은 고정돼 있고 씨실이 날실 방향으로 왕복운동을 하면서 천이 만들어지는데, 이때 날실이 기준이 된다. 그래서 '경(經)'은 우리가 나갈 바를 밝혀주는 지표를 상징한다.

그렇기에 일찍이 삼봉(三峯) 선생이 조선의 앞날을 위해 왕에게 지어 올린 법전이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이고, 조선의 최고 법전이 '경국대전(經國大典)'이다. 중국에서도 민족의 정신으로 '오경(五經)'이 있고, '화엄경' '법화경' '금강경'에서 '경(經)'은 부처님 말씀이고, 기독교와 유대교의 바이블도 '성경(聖經)'이다. '영(營)'은 '꾀하다' '짓다' '만들다'의 뜻이므로 '경영(經營)'은 '제대로 된 방향을 세우고, 그 방향으로 천을 짜듯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오늘이 어제와 같은 학교'로는 답이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DeCeCo 프로젝트를 통한 생애핵심역량 설정, 제4차 산업혁명 도래, 미래 직업 세계의 변화를 학교 교육 과정에 두루 반영하려면 능동적인 학교 변화가 불가피하다.

더구나 학교정책 추진도 상부 지시에 의한 하향식 방식이 아니라 학교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한 상향식 방식을 확대해 학교자치를 지향하는 학교 자율경영의 튼튼한 바탕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학교 리더는 학교 변화의 방향성과 로드맵을 명확하게 설정하고, 이를 제대로 관리할 수 있는 역량을 지녀야 한다.

학교 교육에서의 날실은 학교의 비전을, 씨실은 비전 구현을 위한 다양한 교육 활동을,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천은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일상을 은유한다. 씨실이 날실의 방향으로, 날실 사이로 원활하게 소통하고 왕복할 때 결이 고운 베가 짜이듯 학교공동체의 삶도 더 넓고 윤택해질 수 있지 않을까? 바야흐로 '학교관리자'가 아닌 '학교경영자'가 필요한 시대를 맞았다.

부산북부교육지원청 교육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