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대 대통령 중 탄핵 위기에 몰린 이는 앤드루 존슨(17대), 리처드 닉슨(37대), 빌 클린턴(42대)까지 3명이다. 닉슨은 탄핵 직전에 자진 사임했고, 존슨과 클린턴은 상원 탄핵안 표결에서 면죄부를 받았다. 닉슨과 클린턴의 탄핵 소추 사유는 떳떳지 못하다. 닉슨은 민주당 선거운동본부에 도청 장치를 가설한 '워터게이트 사건', 클린턴은 섹스 스캔들인 '지퍼게이트'다. 이들은 탄핵 심판대에 오르게 된 계기도 눈길을 끈다.

닉슨은 '한 장의 쪽지'다. 워터게이트 사건이 불거진 초기에는 직접 범죄를 저지른 정보요원들이 재판에 회부됐지만 대다수가 배후에 대해 굳게 입을 다물어 닉슨은 위기를 비켜가는 듯했다. 그러나 한 명이 담당 판사에게 쪽지를 보내 "백악관에 의해 고용됐고, 이 사실을 누설하지 않으면 사면해준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폭로하면서 닉슨의 연루 사실이 드러나 1974년 8월 사임으로 이어졌다.

클린턴은 '녹음테이프'다. 1998년 1월, 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백악관 직원이었던 모니카 르윈스키와 린다 트립의 전화 통화 녹음테이프를 입수해 보도했다. 거기에는 "1995년 백악관 파티에서 클린턴과 눈이 맞아 18개월간 대통령 집무실에서 밀애를 나눴다"는 르윈스키의 고백이 담겨 있었다. 당초 르윈스키는 클린턴과 성관계를 갖지 않았다고 위증했으나 트립이 몰래 녹음한 이 테이프로 인해 증언을 번복하게 된다.

미국의 대통령 탄핵 소추 바통이 도널드 트럼프에게 갈지도 모른다. 이번 계기는 '해임된 연방수사국장의 증언'이다. 워싱턴에선 이를 미식축구 챔피언 결정전에 비유해 '정치권의 슈퍼볼'이라 부른다.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은 8일(현지시간) 상원 정보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트럼프 대통령에게서 '러시아 스캔들'의 몸통인 마이클 플린 전 국가안보보좌관에 대한 수사 중단 요구를 받았다고 밝혔다. 러시아 스캔들은 지난해 미 대선 때 트럼프 선거캠프가 러시아와 내통했다는 의혹이다. 코미 전 국장의 말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은 사법방해죄로 탄핵될 수 있다.

세계 최강국의 일이다 보니 국제금융시장이 요동치는 등 파장이 만만찮다. 이달 말 미국과 정상회담을 갖는 우리도 걱정이다. 럭비공 같은 트럼프 대통령이 자국의 탄핵 여론에 물타기를 하기 위해 '북핵시설 선제타격' 따위의 돌출발언으로 다시 한반도 위기를 고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