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한 정신을 추스르려 신선한 공기를 맡고 싶어졌다. 건물을 나서 짙어진 벚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았다. 열 발짝씩이나 될까, 푸드덕 푸드덕 오르내리던 누리끼리한 것이 날아간 거리가. 날짐승이 방향을 틀어 이쪽에 가까워지자 벌떡 일어나 햇살 아래로 성큼 나섰다. 뜀뛰던 날짐승은 철 이른 메뚜기로 두 치 가웃 제법 컸다. 다가오는 그림자를 알아챘는지 뒷다리를 잔뜩 도사린 녀석이 일순 멈칫한다. 어느새 날아온 직박구리가 사납게 잡아채려는 것을 눈치챈 탓이다. 메뚜기를 사이에 두고 인간과 새가 대치하는 상황. 새는 내게 한 번 눈길을 주고 고개를 갸웃하더니 날아온 나뭇가지로 돌아가 감시하기 시작한다.
무슨 일이 벌어지건 두 살배기 어린 까치들은 녹음 아래 떨어진 버찌를 주워 먹느라 여념이 없다. 메뚜기를 놓쳐 분한 끝인지 직박구리는 제 덩치보다 곱절이나 큰 까치에게 달려든다. 으레 까치들은 폴짝폴짝 예의 까치걸음으로 멀리 피하지 않는데 나도 벤치로 돌아와 추이를 본다.
아스팔트에 쩍 달라붙은 듯, 꼼짝 않는 메뚜기를 중심으로 인간과 직박구리와 까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경계가 생겼다. 메뚜기는 꼼짝 않는 것이 상책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아는 것 같다. 이런 상황과 상관없이 월경을 일삼는 것은 부지런한 참새들이다. 영문을 모를 리 없는 참새들이 무심히 부리로 땅을 후비는 짓은 까치밥인 버찌에 넌지시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난데없는 초여름의 대치 국면이 소강에 접어들자 예전에 읽은 이야기 하나가 떠올랐다.
조릉 울타리 안을 돌아다니던 장자는 까치처럼 생긴 이상한 새가 남쪽에서 날아오는 것을 보았다. 날개 길이가 일곱 자, 눈 크기가 한 치나 되어 보이는 큰 새인데 장자 이마에 부딪혔다가 밤나무 숲에 앉았다. '무슨 새지? 날개가 커도 잘 날지 못하고 눈이 커도 잘 보지 못하다니!' 중얼거리던 장자는 거추장스러운 치맛자락을 걷어 올리고 재빨리 다가가 활을 잡고 겨냥하다 깜짝 놀랐다. 낫 같은 앞다리를 치켜든 사마귀가 짙은 녹음 아래 정신없이 울고 있는 매미를 노리고 있는 게 아닌가. 매미에 정신이 팔린 사마귀 뒤에는 장자가 저를 노리는 줄도 모르는 이상한 새가 노리고 있었다. '만물의 본성은 서로 누를 끼치는 것이로구나. 이롭고 해로움이 다르지만 서로가 서로를 불러들이니 말이다'. 이리 깨달은 장자는 활을 버리고 왔던 길을 돌이켜 뛰어갔다. 욕을 하면서 쫓아오는 밤나무 임자를 뒤에 달고 말이다.
장자는 집에 돌아와서도 석 달 동안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편치 않은 마음은 표가 나는 법. 기색을 살피던 제자가 이유를 묻자 장자는 자신이 겉모양만 고수하다가 실재하는 알맹이는 잊었다고, 흙탕물을 자꾸 보다 보니 깊은 연못의 맑은 물에서조차 어른어른 분간이 안 된다고 대답한다. 장자에서도 유명한 이 대목은 흔히 당랑박선(螳螂搏蟬) 당랑규선(螳螂窺蟬) 당랑재후(螳螂在後) 따위의 성어로 요약해서 회자된다. 낱말만 조금씩 다르지 뜻은 같다. 눈앞의 이익에 정신이 팔려 이미 닥친 위험을 미처 모른다는 뜻으로 말이다.
장자가 이익과 욕망에 따라 돌아가는 세상의 이치를 꼬집은 것은 맞다. 그러나 우화의 대가인 장자가 그리 간단히 말했을까. 장자의 진심은 이야기의 시작, 바로 '울타리 안'이라는 말로 시작한 데 있다.
시스템, 게임, 구조 따위도 울타리이긴 마찬가지다. 울타리 안에서 자신이 울타리 안에 있다는 것, 안에서는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의 허망함이라니. 장자는 울타리를 벗어나 집으로 돌아가서 곱씹어 보지만 불쾌감은 가시지 않았다. 울타리 안에 남았던 매미, 사마귀, 이상한 새의 결말이 어땠는지는 장자도 알 길이 없을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노리는 광경만 보고 허둥지둥 산지기에게 쫓긴 탓이다.
우화라는 제목을 기왕 달았으니 끄트머리에 교훈을 밝히는 우화의 상례를 따라 내 우화의 결말도 이야기해볼까 한다. 물고 뜯는 이욕의 장에서 꼼짝 않는 게 상책이라는 메뚜기는 지금 내 형편과 몹시 닮았다. 무심한 체하면서 남의 밥을 엿보는 참새를 닮았을뿐더러 철모르고 깡충거리며 놀이에 빠져 있는 까치도 닮았다. 하지만 제 배 불러도 남이 먹지 못하게 헤살 놓고 저만의 영역이 아닌데도 굳이 남을 밀어내는 직박구리는 닮지 않아 다행이다 싶다.
이제 내가 본 메뚜기의 후일담을 알리고 마칠까 한다. 감시에 바쁜 눈초리로 그렇게 한참을 노리던 직박구리는 결국 메뚜기를 잊어버리고 멀리 다른 나무로 날아갔다. 직박구리가 날아간 뒤에도 꼼짝 않던 메뚜기는 메뚜기 따위 전혀 관심 없이 동무들과 노느라 바빴던 까치 가운데 한 마리가 폴짝폴짝 대중없이 코앞까지 뛰어와서야 훌쩍 근처 풀숲으로 날아들었다. 메뚜기의 갑작스러운 날갯짓에 흠칫 놀란 까치 꼴에 미소 지으며 나도 천천히 벤치에서 일어나 조금 맑아진 정신으로 돌아왔다.
경성대 중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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