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영국인 관광객 2명은 미국에서 휴가를 보내려 입국하던 LA공항에서 영문도 모른 채 12시간이나 보안당국으로부터 황당한 조사를 받았다. 나중에 알게 된 이유인즉슨 한 명이 트위터에 올린 'I go and destroy America'란 짧은 글 때문이었다. 'destroy'란 단어에 화들짝 놀란 당국이 이들을 테러 용의자로 분류하고 조사를 벌였던 것. 하지만 영국 관광객이 쓴 'destroy'는 '격렬한 파티'를 농담조로 인용한 것이었다. 미국에서 미친 듯이 파티를 즐기며 놀아보겠다는 농담 한 구절의 대가는 이토록 컸다.

영국 관광객이 이런 황당한 일을 겪은 건 이른바 애국법으로 불리는 미국의 '테러대책법' 때문에 가능했다. 2001년 9·11테러에 충격을 받은 사회 분위기에 힘입어 사건 발생 6주 만에 전격적으로 발효된 법이다. 애국법은 테러 용의자를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으며 무기한 감금, 조사가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히 이 법의 215조는 무차별적인 정보 수집의 근거가 돼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인권 침해 등 부작용이 속출하자 미국은 2015년 결국 애국법을 폐지했다.

이번엔 일본 국회에서 '테러대책법안'이 강행 처리되면서 시끌시끌하다. 이른바 '공모죄 법안'으로도 불리는 이 법은 테러를 공모만 해도 처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테러를 미연에 방지한다는 목적이지만 마음만 먹어도 처벌을 할 수 있으니 '마음처벌법'이나 다름없다. 처벌 대상인 중대범죄가 무려 277개에 달해 시민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감시사회'로 일본을 몰고 간다는 비판이 거셌지만 아베 정권은 끝까지 밀어붙여 통과시켰다.

우리는 이미 수많은 감시 속에 살아가고 있다. 하루에도 수십 차례 CC TV에 노출되고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신용카드, 교통카드 등은 우리 행적을 낱낱이 기록하고 있다. 미국의 보안 전문가 브루스 슈나이어는 빅데이터 시대에서 감시가 갖는 가장 큰 특징은 광범위성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빅브라더에 감시당하는 개인은 결국 고분고분해질 수밖에 없다고 슈나이어는 주장한다.

일본의 '테러대책법'이 사람의 마음까지 처벌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정부는 국민 모두를 감시하는 더욱 강력한 수단을 갖게 됐다. 가뜩이나 감시사회에 주눅이 들어 있는 판에 마음까지 요리조리 숨겨야 하는 골치 아픈 세상이 남의 일이 아닌 듯하다.

장재건 논설위원 jj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