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열 81.2점, 풍력 77.8점, 수력 74점, 화력 51.3점, 원자력 32.7점'. 최근 성균관대 SSK위험커뮤니케이션연구단이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발전 및 에너지원에 대한 인식 조사' 결과다. 응답자들은 신재생 에너지에 높은 점수를 준 반면, 원전과 화력발전에는 낮은 점수를 매겼다. 또 '노후 원전 가동 연장'에는 78%가, '추가 원전 건설'엔 66.4%가 반대 의사를 밝혔다. 탈원전·화전으로 가닥을 잡은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 힘을 실어주는 대목이다.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을 전체의 20%로 높이겠습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6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총회에서 탈원전·화전 기조를 거듭 천명했다. 그 목표가 달성될 경우 문 대통령의 공약대로 노후 원전과 화전을 단계적으로 폐쇄하고, 신규 건설계획을 취소하더라도 전력수요를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로 나라와 민생의 바퀴를 돌리는 혁신적인 세상이 성큼 다가오는 듯하다.

우리에게 그런 세상으로 가는 길이 열리는 걸까. 고리원전 1호기가 40년 노동을 내려놓고 영원한 휴식에 접어든 오늘, 공책을 펼쳐 에너지 역사를 새로 쓰는 심정으로 질문을 던져 본다. 탈원전의 첫걸음을 내딛는 일대 전환기를 맞은 건 분명하지만 아직 전망은 붙투명하다. 그리고 현실은 장밋빛 꿈을 풀어놓기엔 너무 이르다. 전국적으로 불거지고 있는 신재생에너지 발전소 거부 현상에서 녹록지 않은 현실을 볼 수 있다.

여론조사 결과와 현장 반응은 사뭇 다르다. 동서발전과 대우건설이 1조 원을 들여 아산만에 28.5㎿ 규모의 조력발전소를 건설하려다 2011년 포기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2년간 노력했지만 환경파괴와 어획량 감소를 우려하는 주민들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경북 경주시 내남면에서도 태양광 발전소(19.2㎿) 건설사업이 1년간의 진통 끝에 지난 4월 결국 무산됐다. 거창군 북상면, 함양군 백전면 등 경남지역 역시 태양광 발전사업 좌초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클린에너지 발전소가 환경훼손시설로 냉대받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지방자치단체들도 신재생발전소 건설을 제한하는 조례를 제정하고 나서 사태가 더욱 꼬이고 있다. 산업자원통상부에 따르면 전남 21곳, 경북 15곳, 충북 11곳, 충남 10곳, 강원 7곳, 전북 5곳, 경남 3곳 등 현재 전국 75개 기초지자체가 관련 조례를 만들어 시행 중이다. 제주와 인천에서도 규제 운영지침을 마련했다. 지자체에 따라 마을·도로·농지에서 100~200m 이상 떨어진 곳에 신재생발전소를 짓게 하는 바람에 마땅한 입지를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러다 보니 일각에서는 "원전 줄이기와 신재생에너지 보급을 동시에 이룰 수 있는 솔루션이 나오기 힘들다"는 비관론이 비등하다.

국내 지자체들의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매우 낮다. 2015년 기준으로 부산 1.3%, 서울 5.5%에 불과하다. 부산시는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보급비율을 3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발표했지만 실현 가능성에 의문표가 따라붙는다. 서울시가 2012년부터 대대적인 신재생에너지 확대 운동을 벌여 3년간 비중을 겨우 1.3%포인트 올린 데서도 그 사정을 짐작할 수 있다. 신재생에너지 발전소 기피 현상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문 대통령이 제시한 '20% 목표'도 헛구호에 그칠 수 있다.

비싼 발전단가를 이유로 내세운 탈원전에 대한 반론 또한 만만찮다. 신재생에너지의 경우 ㎾h당 158원으로, 천연가스(126원)나 원전(63원)에 비해 경제성이 떨어진다. 이 때문에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높이는 나라 중 원전과 화전을 동시에 포기한 나라는 전 세계에서 한 곳도 없다"는 반박이 나온다.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늘면 전기료도 오르게 된다. 전기료 인상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 것 역시 난제다. 탈원전으로 가는 길은 그래서 가시밭길이다.

하지만 절망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지금은 그 길이 험난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평탄하고 넓어질 전망이다. 지난 15일 블룸버그신에너지금융연구소(BNEF)는 2040년 태양광 발전비용이 세계 평균적으로 현재보다 66% 내려갈 것이라는 보고서를 내놨다. 우리나라의 하락비율은 76%로 추산됐다. BNEF는 같은 기간 풍력 발전비용도 해풍과 육풍이 각각 47%, 71%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결론은 세계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50%로 확대되리라는 거다. "발전체제의 녹색화는 멈출 수 없는 추세"여서다.

관건은 의지와 끈기다. 몸에 좋은 약이 입에 쓰듯, 클린에너지를 얻으려면 이만한 고통은 감내해야 하지 않을까. 머리를 맞대고 신재생에너지 발전소를 늘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다 보면 어느덧 이해와 배려의 미덕이 일상 도덕으로 뿌리내릴지도 모른다. 우리가 소망하는 '클린에너지 공동체'다. 이 사회를 어떻게 이룰지는 고리원전 1호기가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던진 화두가 아닐까.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