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당 1만3000원에 위험천만한 로프공으로 일해오던 유 씨는 이 기술로 해외취업도 갔다 왔으나 집 한 칸 마련하지 못한 채 6월 말 출산 예정인 셋째아이의 조산비를 벌려고 일을 나섰다 변을 당했다." 1981년 5월, 서울의 한 일간지는 밧줄을 타고 아파트 외벽에 매달려 페인트칠을 하다 13m 아래로 떨어져 숨진 30대 남자의 안타까운 사연을 전했다. 이 매체는 당시 서울에만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200여 명에 이르고, 1년에 추락사고가 5~6건씩 발생한다고 소개했다.

로프공은 1980년대 도시 밑바닥 인생을 상징한다. 늘 죽음의 그림자를 달고 살지만 노동 대가는 박했다. 1986년 무대에 올려진 연극 '칠수와 만수'에서도 로프공의 고달픈 삶을 들여다볼 수 있다. 미군 기지촌에서 일하다 미국에 간 누나 소식을 기다리는 칠수와 반공법 위반으로 장기 복역 중인 아버지 때문에 취업을 못하는 만수가 주인공이다. 그들은 어느 날 일을 끝내고 광고탑에 올라가 술잔을 나누며 신세 한탄을 한다. 발 아래 세상을 향해 토해내는 칠수의 울분이 인상적이다.

"나도 우리 읍내에선 알아주는 주먹이었거든. 챔피언이 되어서 화려하게 살아보고 싶었어.…인간 장칠수가 이 따위 페인트통에 목숨걸 줄 알아. 두고 봐. 나 이거 때려치우고 남부럽지 않게 살거야." 술김에 실수로 페인트통을 떨어뜨려 밑에서 큰 혼란이 일어나고, 둘은 동반자살 시도자로 오인돼 경찰까지 출동한다. 소동 끝에 만수는 투신하고 칠수는 경찰에 잡혀간다. '밧줄 인생'의 추락이다.

'오륙도(56세까지 일하면 도둑)' '사오정(45세 정년)' '삼팔선(38세 퇴직)'…. 1997년 환란 이후 '밧줄 인생'은 모두의 상징이 됐다. 언제 직장에서 쫓겨나거나 사업이 망해 밑바닥으로 떨어질지 모른다는, 생존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몸부림이다.

그래도 아직 세상은 절망보다 희망의 빛이 더 강하다. 내 일처럼 남의 슬픔을 어루만지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이웃이 많아서다. 최근 경남 양산에서 아파트 벽을 도색하다 입주민이 밧줄을 끊는 바람에 추락해 숨진 김현우 씨 유족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다. 양산시민 2200여 명을 비롯해 유족이 사는 부산 등 전국에서 성금과 격려메시지가 쇄도하고 있다. 끊긴 밧줄을 이어주는 '온정의 밧줄'인 셈이다. 김 씨의 부인은 "따뜻한 위로에 힘을 내 아이들을 잘 키우겠다"며 고마워했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