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0년대 영국 옥스퍼드 대학 강의실에서는 획기적인 강의가 펼쳐진다. 강의자는 이 대학 출신의 작가이자 철학자인 존 러스킨(1819~1900)이었다.

그는 강의를 위해 19세기 영국 최고의 인상주의 화가 터너(1775~1851)의 판화 '레스터 아비의 풍경'이라는 작품을 가지고 나왔다. 1834년에 새겨진 것으로 허물어진 수도원 풍경 뒤로 소어강에 돌로 놓인 징검다리를 한 소녀가 장난스럽게 건너는 중이고, 그 옆에 아버지로 추정되는 이가 두 마리의 말에 물을 먹이고 있는 풍경이 새겨져 있다. 그러나 터너는 붓을 들어 거침없이, 물론 액자의 유리 위였지만, 징검다리 대신 거대한 덩치의 다리를 그리고 수도원이 보이는 뒤편의 하늘을 시꺼멓게 훼손하기 시작했다. 강의를 듣던 학생들의 놀라움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 에피소드가 전해진 것도 이 강의를 들은 학생 중 훗날 당대 최고의 학자가 된 젊은 후스맨이 남긴 기록 때문이었다.

러스킨이 이런 파격적 강의를 한 이유는 "우리가 지금 아름다운 풍경에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를 보라"라는 것이었다.

러스킨이 살았던 당시는 산업혁명이 극대화되면서 영국 전역이 공장으로 넘쳐났고, 도시는 팽창되고, 아름다운 경관을 지닌 시골마저도 개발과 관광이라는 명분으로 원래를 모습을 급격하게 잃어가는 즈음이었다. 러스킨은 이러한 개발이 우리가 살아가야 할 경관의 아름다움을 얼마나 해치는지를 온 힘을 다해서 알리고 막으려 했던 사람이었다. 이러한 러스킨의 노력은 자신의 삶에서는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지만 많은 이에게 큰 영향을 준다.

지금의 영국 최고의 휴양지로 영국인들의 지극한 사랑을 받고 있는 레이크 디스트릭트도 한때는 이 관광개발 붐을 피해갈 수가 없었던 곳이었다.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철도가 개설됐고, 이웃해 있는 거대 도시 맨체스터의 물을 공급하기 위해 이곳에 댐을 만들 계획도 있었다. 또 아름다운 풍경을 보려고 몰려들 관광객을 위해 숙박시설을 짓고, 길을 넓히려고도 했다.

하지만 러스킨의 뒤를 이를 세 명의 인물은 아름다운 풍경을 지키기 위해 맹렬히 싸우기 시작했다. 자산가이자 사회운동가 옥타비아 힐, 변호사 로버트 헌터, 환경운동가 캐논 론슬리가 그 주인공이었다. 그중 수장의 역할을 한 옥타비아 힐은 점점 열악해지는 도시의 주거환경이 얼마나 인간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지에 대해 주목했다.

그녀는 런던 도심의 낡고 오래된 건물을 임대해 그곳을 쾌적하고 아름다운 주거환경으로 고친 뒤, 이곳을 다시 아름다운 집을 가꾸며 살고자 하는 의지를 지닌 도시 노동자에게 재임대했다. 이 사업의 목적은 한 번도 흐트러짐없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갔다. 아름다운 주거환경은 인간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이 사업을 통해 얻는 수익의 상당 부분을 존 러스킨과 그의 지지자들의 환경 지키기 운동을 위해 썼다. 훗날에는 헌터와 론슬리를 끌어들여 1895년 드디어 세계 최고의 민간 환경지키기 단체인 '내셔널트러스트'를 설립한다.

이들이 벌인 운동과 사업의 성과는 지금의 레이크 디스트릭트가 고스란히 보여준다. 호수와 산을 가리고 불쑥 솟아난 숙박 건물과 정취를 잃어버린 크고 넓게 뚫린 도로, 우후죽순으로 들어선 난잡한 상업 건물로 뒤덮였을 레이크 디스트릭트는 시간이 멈춘 듯 100년 전 아름다운 산, 호수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아름다운 환경을 지키기 위한 이들의 활동은 흔히 '아름다움을 위한 투쟁'이라고도 표현한다. 투쟁이라는 다소 과격한 단어가 거슬릴 수도 있지만, 이들이 아름다운 시골 풍경을 지키기 위해 해온 일들은 거칠고 너무나 힘겨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살짝 반전도 숨어 있다. 관광개발을 막으려 했던 이곳이 오히려 고부가가치를 일으키는 세계 최고의 관광 명소가 된 것이다. 숙박시설이 없는 탓에 이곳에서 휴가를 보내려면 주민들의 민박을 찾아야하는데 인기 휴가철에는 6개월 전 예약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길을 넓히지 않은 덕에 몰려드는 인파로 교통 체증에 시달리지도 않고, 마음 불편한 관광지 호객도 없다. 산과 강을 즐기는 일도 공해를 일으키는 에너지를 쓰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산을 오르고, 카약을 몰아야 한다.

지금의 우리를 돌아본다. 자연경관이 좋은 대부분의 곳은 지금 관광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경관을 망가뜨리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아름다움을 지키지 못하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불행해지고, 이 아름다움의 볼거리가 없는 곳에는 더는 사람들도 찾지 않는다는 것을 잊고 있는 셈이다.

이제 곧 휴가철이다. 아름다운 곳을 찾아가는 마음, 아름다운 곳을 지키려는 마음은 결국 하나다. 아름다움 이 지구 속에서 우리 자신도 아름다워지기 위해서다!

작가·가든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