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서 더러 궁합을 보는 사람들이 있다. 주로 결혼할 때 많이 보는데 일상에서도 궁합은 존재하는 것 같다. 유난히 잘 어울리는 사람이나 사업. 궁합의 시각으로 보면 적지 않다. 궁합은 오래전부터 전해오지만 이제는 미신 취급을 받는다. 그래도 여기저기 갖다 붙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 붙여보기가 의학과도 만날 수 있을까? 의사와 환자의 궁합? 어감이 자연스럽지 않다. 의학은 과학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궁합은 의학에도 손을 뻗는 때가 있다. 순전히 경험에 의한 것만 몇 개 짚어보기로 한다.

먼저 우리 아이의 경우였다. 젖먹이 시절, 저녁 무렵이면 자지러지게 울었다. 어쩌다 처가 쪽 신세라도 지게 되면 '떼쟁이 울보'라는 별명까지 붙어왔다. 울보라는 불명예도 싫었고 아이가 특정한 시간에 보채는 것도 염려가 되었다. 여러 소아과를 찾아다녔다. 진단은 비슷하게 나왔다. 시간이 지나면 차차 괜찮아질 거라고 했다.

한 번은 아이가 울다 열이 올랐다. 저녁 시간이라 소아과들이 문을 닫아버렸다. 그만한 일로 대학병원 응급실을 가기도 뭣한 차에 동네 한의원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만은 문이 열려 있었던 것. 급한 김에 문을 열었다. 들어가서는 살며시 후회했다. 진료 차 나온 한의사가 새파랗게 젊었다. 그는 꼬마 철퇴같이 생긴 침으로 아이 몸을 두루 자극해주었다. 됐습니다. 가보세요. 그게 다였다. 괜히 시간만 잡아먹은 건가? 찜찜한 마음으로 돌아왔는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다음 날부터 아이의 특정 시간 보챔이 사라진 것이다. 명의가 따로 있나? 내 병 낫게 해주면 명의지. 젊다고 마뜩잖게 생각한 걸 두고두고 반성했다.

두 번째는 어머니의 사례다. 우리 어머니, 만성 변비로 모진 고생을 하고 있었다. 신새벽부터 불발탄을 쏘고 나와 시들거릴 때면 내 복장도 함께 터졌다. 어머니 역시 동네 내과와 중형병원을 두루 방문했지만 신통한 효과를 보지 못했다. 어쩌다 급하면 응급실에서 관장대포를 한 방 발사해 땜빵을 하는 게 고작이었다. 의사들은 약을 한 보따리씩 지어주었지만 배만 볶아댈 뿐 밀어내기에는 실효가 없었다. 물 많이 드세요. 야채와 과일 많이 드세요. 운동 많이 하세요. 의사들의 말은 붕어빵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또래보다 많이 움직였고 고기보다 야채, 나물을 선호하는 식단이었다. 다시마환부터 청국장환까지, 변비에 좋다는 것들을 수년간 장복해봤지만 차도는 없었다. 그러던 중, 한 의사가 대장내시경을 권했다. 연로하지만 밀어내기 한 번 시원하게 해볼 욕심으로 시도했다. 물을 한 드럼이나 마셨다. 맙소사, 어머니의 대장은 용종 하나 없이 깨끗했다.

나는 더 해줄 게 없었다. 내가 대장 안으로 들어가 폭설을 치우듯 가래질을 할 수도 없는 일. 그래도 하소연이 그치지 않으니 자식 된 입장에 마지막 도리로 대학병원행을 결정했다. 유레카는 거기 있었다. 소위 궁합이 맞는 의사를 만난 것이다. 이 분이 지어준 약은 직방이었다. 다음 날부터 어머니는 변비의 고통에서 해방되었다. 대한민국 의사 면허에 차등이 있을 리 없으니 궁합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은 내 경험이다. 손가락에 생긴 피부병이었다. 웬만한 상처는 1주일 안에 끝장이 나는데 이놈은 잘도 버텼다. 피부과를 갔다. 3주가량 치료받았지만 별 차도가 없었다. 피부과를 전전했다. 조금 낫는 듯하더니 도로아미타불이 되었다. 그러는 동안 병명도 피부병에서 한포진, 대상포진 등으로 왔다 갔다 그네를 탔다. 6개월가량 고전하면서도 상처를 잡는 의사를 만나지 못했다. 내 궁합도 따로 있었다. 비슷한 피부병을 앓았던 지인이 알려준 피부비뇨기과였다. 2주 정도 다니자 손가락 위의 붉은 눈물이 사라졌다.

의사와의 궁합. 나만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뜻밖에 많았다. 어, 의사와 환자, 궁합이 성립되네? 하지만 이 말을 누가 인정할 것인가? 허튼 생각 버리고 운동이나 해야겠다. 건강해서 병원에 안 가면 의사와 궁합을 돌아볼 일도 없는 법. 가만, 그래도 엊그제부터 아프기 시작한 허리 통증 치료는 받고 시작해야겠지? 이건 또 어디로 가야 한방에 해결된다지? 엑스레이 찍고 물리치료 잘하는 동네 정형외과? 가기 무섭게 MRI 돌리고 척추주사로 원샷에 해결하는 척추전문병원? 아니면 장침 잘 놓는다는 한의원? 맙소사, 나는 여전히 궁합의 쳇바퀴를 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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