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숲길] 이미자와 유선방송 /박명호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입력 : 2017-06-30 19:3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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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KBS '열린 무대'에서 이미자 특별 쇼가 있었다. 이 프로그램에서 대중가요를 부르는 가수를 무대에 세운다는 것은 무척 드문 일이다. 그것도 요즈음 가수가 아닌 옛날 가수를, 한 사람만을 위한 시간을 할애한다는 것은 특별한 경우였다. 그렇다고 해도 그 프로그램을 의아하게 생각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그가 장르와 시대를 뛰어넘는 우리 한국인의 정서를 대변한 국민 가수이기 때문이다.

나는 비교적 어린 시절부터 이미자 노래를 알았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경북 산골에는 유선방송이라는 것이 있었다. 매월 얼마씩 사용료를 내면 선으로 연결된 앰프(스피커)를 설치해 준다. 앰프는 집안에서 중심이 되는 곳에 제비집처럼 자리 잡는다. 가느다란 전선에 연결된 유선방송은 전기도 들어오지 않던 첩첩 산골에서 세상과 접할 수 있는 소중한 통로였다. 듣기만 하는 라디오는 보는 것보다 상상력까지 보태져 한층 신비감을 불러일으킨다.

기억이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아침 5시부터 밤 10시까지 중간중간 한두 시간 쉬고는 종일 방송이 흘러나왔다. 주파수도 KBS1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 시절 생각나는 프로그램은 아침 이른 시간에 격언이나 명언을 소개하는 '마음의 샘터'가 있었다. 배경음악이 타이슨의 명상곡이었는데 나는 어린 시절 곡명도 모르면서 그윽한 음악에 익숙해졌다.

그것은 뒷날 내가 클래식을 좋아하는 동기가 된 것 같다. 특히 이른 아침 어렴풋이 잠에서 깨어나면 문창지로 비치는 희뿌연 빛과 윗목에서 새끼를 꼬는 아버지의 실루엣 같은 모습을 보며 거기에 깔리던 타이슨의 음악은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풍경으로 내 기억의 샘에 저장되었다. 아침 식사 시간에 하는 명랑가족 연속극, 점심시간 무렵 '눈물 젖은 두만강'이 배경 음악이 된 5분 연속극 '김삿갓 북한 방랑기' 등이 기억에 남는다.

그러나 무엇보다 유선방송이 크게 인기를 끈 것은 하루에 재방송 포함해 두 번씩하는 연속극이었다. '섬마을 선생님' '동백꽃 피는 항구' '정동대감' 등이 방송되었다. 무엇보다 방송 연속극의 또 다른 매력은 드라마 앞뒤로 흘러나오는 주제곡이었다. 그때 한창 잘나가던 이미자가 주로 불렀는데 큰 인기를 끌었다.

지금에 와서 그 드라마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노래는 대부분 살아남아 있다. 특히 겨울 농한기이면 낮 재방송 연속극 시간에는 마을 사람들이 햇볕 좋은 우리 집 마루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그리곤 마치 제비집 제비 새끼들처럼 소복이 모여 귀 기울여 같이 듣곤 했다. 그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한 폭의 아름다운 동화 같다.

나는 어린 나이에도 이미자의 노래 가사를 어른들보다 먼저 외어 불렀다. 그러면 마을 어른들은 그런 내가 신기해서 다른 노래도 시켜보곤 했다. 나는 그것이 참 신났다. '동백 아가씨' '황포돛대' '흑산도 아가씨' '울어라 열풍' '지평선은 말이 없다' 등등 주옥같은 노래를 한두 번 듣고도 바로 따라 부를 정도였다.

내가 이미자 노래를 좋아하게 된 데에는 그 시절의 영향이 크다. 요즈음 오리지널 음판으로 그때 이미자의 노래를 듣노라면 눈물이 배어 있는 것 같은 추억과 정서가 깃들어 있다. 당시 모든 국민의 정서를 움직였던 가수였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국민가수'라고 한다. 역대 우리나라의 시인, 가수 중 우리 국민의 정서에 그만큼 큰 영향을 끼친 자가 있을까.

이미자가 국민적 사랑을 받는 가수가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마 개인적으로 천부적인 고운 목소리와 뛰어난 가창력 덕도 있겠지만, 다른 차원에서 본다면 그가 이른바 뽕짝(트로트라고도 하는데, 나는 뽕짝이란 말이 더 좋다)이라고 하는 우리 전통가요의 특징을 가장 잘 소화해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뽕짝의 원조에 대해 한국과 일본 사이에 논쟁이 있지만, 우리의 민요와 무관하지 않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다.

우리 민요 중에서도 경상도 강원도 함경도 지방을 아우르는 동부 민요의 이른바 메나리 가락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메나리 가락의 특징은 꺾고 떠는 데 있다.

'밀양아리랑'의 예를 들면 '날 좀 보소, 날 봄 보소'가 아니라 '날 좀 보소오오 ,날 조오옴 보오소오오' 몇 번씩 꺾고 떤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님'에서도 '해당화 피고 지는 섬마을에 철새따라 찾아온 총각 선생님'이란 첫 구절의 경우 '해애당화 피고 지이는 서어엄마으을을에 철새따라아 찾아아자아온 초오옹각악서언새애앵님'으로 역시 몇 번씩 꺾고 떨면서 아주 구성진 가락을 만들어낸다. 우리 국민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하다. 이미자의 진정한 매력은 거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유선방송을 통해 이미자의 노래를 알았고, 이미자의 노래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내 정서의 한 부분을 차지했다. 유선방송이 깊은 산골 우물 안의 개구리를 밖으로 끄집어내 주었다면 이미자의 노래는 내 정서를 우물처럼 깊은 정서의 샘으로 끌어들였다고 할 수 있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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