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검사가 꼭 필요해요?" 전립선암이 의심되어 전립선 초음파 검사를 하자고 했더니 대뜸 돌아오는 대답이다. 80대 초반인 그 어르신의 속내는 복잡하다.
겉으로는 짐짓 생사에 관심 없다 손사래를 치지만 다시 한 번 설득에 나서면 또 다른 속사정이 나온다. "나도 검사도 해보고 싶고 치료도 하고 싶지. 내 모아둔 쌈짓돈도 없고 연금으로 우리 노부부 둘이서 생활하는데, 애들도 자기들 먹고살기 바쁜데 거기다 우째 또 손을 벌리노? 다들 어렵게 사는데 혹 암 진단에 치료한다고 한 집 살림을 거덜 낼까 걱정이다."
문제는 이 걱정거리가 한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 있다. '2016년 말 기준 건강보험 급여비 중 노인 의료비 비중은 36%'. '2030년에 노인 의료비가 연 90조 원을 넘을 것이다'. 노인 의료비에 대한 암울한 뉴스는 단순히 정책적 이슈를 만들기 위한 숫자놀음이라 치부할 수 없다. 의료 최전선에서는 실제로 매일 맞닥뜨리는 현실이며, 주위를 돌아보면 몇 집에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고민거리이다. 최근의 고령화 추세를 고려해 보건대, 노인 의료비의 쓰나미로 '의료파산' 폭탄이 터질 것이라 경고하는 이도 있다.
노인 외래정액제는 65세 이상 환자가 동네 의원에서 외래진료를 받고 전체 진료비가 1만5000원 이하일 경우 1500원만 지급하면 되는 보장성 제도다. 하지만 1만5000원 선을 초과하는 경우 진료비 총액의 30%를 본인부담금으로 내야 한다. 최근 수가 협상에서 결정된 내년 의원급 의료기관 초진 진찰료가 1만5310원으로 오르면서 노인 외래정액제 상한선인 1만5000원을 넘어섰다. 노인정액제 개편 방향을 두고도 여러 가지 방안이 제시되는 가운데 지혜로운 한 수가 나오지 않으면 노인 의료비와 관련해서 마찰이 예상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의료체계를 병원 중심에서 방문간호사나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아 가정에서 자기관리를 하는 지역사회 중심 체계로 전환할 것을 대책으로 제시한다. 서유럽 대부분 국가에서 지역사회 중심으로 의료체계를 전환하는 것은 고령사회에 부담 가능한 비용에서 의료체계를 유지하기 위한 방책이다. 일본도 2012년 지역포괄 케어 시스템을 도입해 의료체계를 병원 중심에서 지역사회 중심으로 전환하고 있다.
특히 일본은 노인진료정책과 관련해서 우리가 참고할 사항이 많다. 일본은 1973년부터 70세 이상 고령자에 대한 노인 의료비 무료정책을 시행한 바 있다. 그러나 해당 정책은 고령자와 의료기관의 도덕적 해이를 유발해 의료보험 재정에 부담을 주게 됐다. 이에 따라 여러 차례 법 개정을 거쳐서 2008년에는 기존의 '노인보건법'이 '고령자 의료의 확보에 관한 법률'로 개정돼 70세 이상의 노인층도 연령으로 구분해 75세 이상인 후기고령자의 경우만 10%의 본인 부담비율을 적용했다. 그러나 일본 역시 계속된 본인부담금 인상, 진료수가의 통제 등 의료비 억제정책이 오히려 의료의 접근성을 저하시키는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어 최근엔 보험료 인상 및 국고보조 확대를 통해 국민 전체가 공동으로 부담하는 정책으로 선회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자기 관리, 지역 중심의 체계로 전환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단순히 의료비용의 충당에만 초점을 둘 것이 아니라 비용이 안 들게 질환을 관리, 교육 및 예방 사업을 통해 노인들이 질환을 자가 관리할 수 있는 역량은 높이는 것이다. 특히 노인에게 많은 당뇨, 고혈압, 심혈관질환 등 몇몇 만성질환의 철저한 교육 및 생활 관리 지도만 잘 되더라고 이런 질환들로 인한 합병증 발생이 줄고 약물치료나 검사비를 줄일 수 있는 것은 자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만성질환 관리사업은 단순히 개인의 건강개선을 위한 사업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의 의료비 파산을 막는 밑거름 사업이다. 만성질환 관리사업은 만성질환 환자의 등록,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한 생활습관 교정, 복약지도, 정보제공을 하고 보건소 등 지역사회와 연계하여 관리, 그를 통한 체계적인 빅데이터 발생으로 사업의 업그레이드 등이 가능해진다. 이는 만성질환자의 건강 수준 향상으로 삶의 질 향상 및 건강관리에 대한 욕구 충족, 치료 지속률 및 자가 관리 역량을 높여 합병증 감소, 그로 인한 의료비 절감 효과, 사망률 감소, 지역사회 건강지표 개선, 지역사회와의 효과적 연계체계 확립으로 자원 효율성 향상을 가져올 수 있다.
이제는 처방 위주가 아닌 예방이 우선시되는 시스템과 정책이 필수이다.
부산의료원 비뇨기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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