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의 장진호 전투 추모사가 미국인들에게 큰 감동을 줬다. 미국인들에게 이렇게 감성적으로 접근한 것은, 정말 잘하셨다."

문재인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 동행취재로 미국 워싱턴DC에 도착한 이튿날, 현지에 거주하고 있는 지인을 만났을 때 들은 얘기다. 문 대통령이 순방길에 오르기 전 "대북 정책과 관련해 미국 현지 분위기가 좋지 않다. 문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치러야 할 텐데"라는 걱정을 하던 이였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국과 워싱턴DC 애널리스트들의 전망은 완전히 상반된 것이었다. 오토 웜비어 씨의 사망, 문정인 통일외교안보특보의 한미연합훈련 축소 발언 논란 등으로 양국 정상이 불협화음을 낼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이 미국 내에서 팽배했지만 국내에서는 정상회담의 성격상 최악의 상황이 연출되지는 않을 것으로 낙관했다.

미국의 부정적인 기류를 전해 들은 기자 역시 돌발변수가 발생하면 문 대통령의 첫 순방이 외교참사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내려놓을 수 없었다. 게다가 이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문 대통령의 기내 기자간담회 도중 난기류로 비행기가 크게 흔들리자, 누군가 "한미 정상회담 난기류?"라는 농담을 했다. 농담인 줄 알면서도 뭔가 찜찜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던 것은 현장에 있던 모두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문 대통령의 장진호 연설은 '북에 대한 제재와 대화를 병행하자'고 하는 한국 대통령의 방미에 의구심을 갖던 미국인들의 마음마저 녹였다고 전해진다. 지인은 한국에 대한 미국인들의 정서는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고 설명했다. 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이 지원했던 나라 중 유일하게 경제적으로 번영을 이룬 나라가 한국이고 한국전쟁 참전용사와 가족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문 대통령의 장진호 연설은 그런 미국인들의 마음을 읽어낸 듯 '장진호 용사'의 헌신에 경의를 표했다. "장진호의 용사들이 없었다면, 흥남철수작전의 성공이 없었다면, 제 삶은 시작되지 못했을 것이고, 오늘의 저도 없었을 것"이라는 표현이 백미였다. 특히 미국인에게 감동을 준 대목은 문 대통령이 연설문을 직접 수정하는 과정에서 개인적인 경험을 더한 부분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만찬 자리에서 문 대통령에게 "장진호 연설에 대해 여기저기에서 칭송하는 소리가 들린다. 축하한다"고 인사말을 건넸다.

장진호 연설은 미국으로 가는 전용기 안에서 문 대통령이 직접 수정했다. 문 대통령이 어머니로부터 전해 들은 흥남철수 당시의 이야기가 두 단락 정도 추가된 것이다. 평소 책을 즐겨 읽는 문 대통령의 감성적 글쓰기 능력을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문제 제기에 대해서도 변호사 출신답게 유연하게 대응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FTA가 미국에 불리한 것이었다고 주장한 데 대해 "양측 실무진이 FTA 시행 이후 효과를 공동 조사하자"고 역제의하면서 무역 문제 논란이 확대되는 것을 차단했다고 전해진다.

문 대통령은 첫 한미 정상회담에서 대북 문제에 관해 미국의 협조를 구하고 한미동맹을 재확인하는 등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다. 다만 공동성명이 나오기까지 걸린 7시간은 어찌 보면 아직 좁혀지지 않은 두 나라의 심리적 거리를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서울정치부 부장 tgki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