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생제를 다량 섭취하면 장(腸) 안에 있는 미생물에게 영향을 주어 세균 감염에 대한 저항성이 떨어진다. 장내 미생물은 단순히 장내에 존재하는 것뿐 아니라 인체의 생리와 면역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음식을 섭취하면 가장 먼저 음식을 분해하고 대사물질을 만들어 사람에게 제공한다. 인체 80% 이상의 면역 세포가 장에서 훈련돼 사람의 몸으로 퍼져 나가고, 장내 미생물이 면역과 대사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연구 결과가 과학계에서 잇달아 발표되고 있다. 자기 몸속 미생물 생태계를 알면 자신의 건강 상태도 파악할 수 있다는 얘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생물은 박멸의 대상이었지만 이제는 달리 봐야 한다. 장내 미생물은 여러 질환의 발생과 예방의 교두보다. 거의 모든 만성 질환 분야에서 장내 미생물 역할이 연구되고 있다. 신경계 질환인 자폐나 치매 등 다른 질환에도 연관성이 있다. 면역계의 질환, 예를 들면 심장혈관 질환, 대사 관련 심장 합병증에 있어 만성 질환이 장내 미생물과 연관성이 있다는 연구가 잇따르고 있다.
유해균인 프로테오박테리아는 기회 감염성 세균이어서 언제든지 배변 활동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고 배앓이 등에 영향을 주는 위험 요인이다. 장내 미생물의 역할을 고려한다면 향후 다양한 질환에 장내 미생물을 조절함으로써 질병을 치료하거나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내장의 불편함과 통증, 장내의 특정 독소나 영양소의 결핍,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 같은 복합적 이유가 자폐증이나 다른 질병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최근 외국에서는 좋은 미생물을 함유한 건강한 변을 대변은행에 기증해 대변 이식술을 시행하고 있고, 실제 질병 치유에도 효과를 보고 있다. 또 특정 미생물은 우리 두뇌에 있는 세로토닌, 가바, 글루타메이트 같은 신경전달물질을 생성하는 것으로 이미 밝혀졌다. 신경전달물질이 내장에서 뇌까지 전달돼 사람의 감정 변화를 줘 긍정적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프레보텔라는 장내 미생물은 서로 건강한 상호작용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유익균이다. 이런 좋은 미생물이 부족하면 건강 유지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특별한 몇몇 병원균이나 좋은 미생물이 많고 적고도 중요하지만, 오히려 다양성이나 균형을 유지해야 장 건강을 지킬 수 있다.
유해균이 무조건 적은 것이 바람직한 것은 결코 아니다. 유해균이 일정한 부분을 차지하면서 유익균과 서로 견제를 이뤄야 지속적으로 자극을 줌으로써 저항력을 키울 수 있다. 유해균이 극단적으로 적으면 유익균 역시 저항성이 떨어질 수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 유인균(Human micro biome)은 인체에 유익하게 작용하는 유산균, 프로바이오틱스 같은 미생물을 광범위하게 포함하는 균으로, 유익균과 유해균 사이에서 유익균이 우위를 점할 수 있도록 작용하는 역할을 한다.
필자는 정형외과 전문병원장으로서 큰 수술을 많이 한다. 환자 대부분이 수술 후 염증을 차단할 목적으로 독한 항생제를 일주일가량 먹어야 하는 탓에 속이 메슥거리거나 복통, 심한 변비나 설사 등 장 건강 이상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내과와 협진도 해보고 여러 가지 방법을 써 봐도 근본적 해결이 되지 않았다. 이처럼 항생제 사용은 장내 미생물의 건강을 위협하는 문제로 이어진다.
이를 해결하려고 오래동안 고심한 끝에 생각해낸 것은 환자들의 장내 유익균을 늘려주는 발효 밥상이다. 독한 항생제 투여로 장내 미생물이 사라진 환자의 장내 미생물을 증식시키기 위해 살아 있는 미생물이 가득한 발효 음식을 제공해 미생물이 장 활동을 개선해주고 떨어진 면역력을 끌어 올려주는 것이다. 몇 달 전부터 센텀의료재단 산하 부산센텀병원과 서부산센텀병원은 살아 있는 미생물인 프로바이오틱스의 먹이로 좋은 과일과 채소의 살아 있는 섬유소가 많은 식품을 환자식에 자주 제공하고 있다.
속이 편안해지면 정신이 맑아진다. 장과 뇌는 긴밀하게 연결돼 있어 장내 미생물의 활동은 사람의 감정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장은 제2의 뇌라고도 불린다. 오늘날 고령사회에서 치료받는 환자 상당수는 60대 후반에서 70, 80대의 노인이다. 노인들이 일정 기간 입원하면 체력이 떨어지고 수술 후 회복이 더뎌 사회 복귀가 늦어지는 사례를 자주 봐왔다. 고령화로 파생되는 이런 문제를 유인균이 풍부한 발효 음식을 섭취함으로써 해결하는 동시에 건강 증진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부산센텀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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