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칼럼] 힘겨울 땐 산으로 가자 /박재현

불편한 다리 이끌며 즐겁게 산 오르는 어느 부부 모습에서

진정한 행복 깨닫고 내 안의 선입견 반성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입력 : 2017-07-12 19:58:07
| 본지 31면

"아침에 산더미 같은 배낭을 짊어진 한 부부를 보았다. 그들은 얼마나 좋을까 부러운 마음에 나는 먼 산을 내 눈에 옴싹 들어다 놓았다. 버스가 정거장에 머무는 순간 나는 그 남자의 머리 위로 불룩 솟은 빵빵한 배낭이 휘청이는 것을 보았다. 그와 동시에 그의 발목이 풀썩 꺾이는걸. 그는 의족을 달았거나 발목이 몹시도 불편한 상태였음을 그때 나는 알았다. 그러나 그는 두 발로 산을 오를 거다. 내 몸뚱이만큼이나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산을 오를 수 있다면 그는 분명 산에 미친 사람일 것이다. 산에서 그는 성한 발길로 산 마음을 딛고 흐느적대는 다른 한 발로 산을 애무할 거다. 어느새 그는 산 벗이 되었음을 알아차리고 산에게 한없는 그리움을 풀어놓을 거다. 그의 아내와 함께."

그는 참으로 힘겨운 다리를 하고 산을 오를 거라는 생각이 들자 나는 그들 부부를 한 번 더 바라보게 되었다. 버스가 그들이 서 있던 정거장에 닿았을 때 버스를 타려고 움직이던 그의 발목이 갑자기 꺾이는 모습은 내게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의 발목은 빵빵하게 터질 것 같은 배낭을 짊어졌기 때문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그 배낭이 히말라야 원정대들이나 짊어지고 갈 그렇게 큰 배낭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내를 바라보는 그의 표정은 너무도 밝아 보였다. 더구나 발갛게 상기된 얼굴엔 너무도 그리워하던 곳으로 간다는 설렘. 마치 어린아이가 소풍을 갈 때처럼 즐거워하는 그런 모습과도 다를 바 없는, 그런 표정을 나는 그의 얼굴에서 읽어낼 수 있었다.

그들 부부를 바라보다가 나는 문득 그들이 한없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지금 산으로 갈 거란 생각에 나도 그들 따라 산에 들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산에만 들면 마냥 행복할 것 같았다.

한창 초록빛으로 물든 나무들 사이를 요리조리 걸으며 큼지막한 바위에 걸터앉아 멀리서 돌돌돌 바위 위를 구르는 골짝 물 소리에 취해 흥얼흥얼 노래라도 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들은 산에 들어 그렇게 시간을 보낼 것이다. 그러기에 그들은 얼마나 행복한가. 세상 모두를 주어도 바꾸지 않을 행복한 시간을 그들은 보내고 있을 것이다.

정거장에 잠시 머문 버스는 그들 부부를 태우고 어디론가 쏜살같이 내달렸다. 버스 맨 뒷자리에 나란히 앉은 그들 부부의 모습이 멀리 사라질 때까지, 흐릿한 창으로 비친 그들의 모습을 나는 멍하니 바라보았다. 한없는 부러움과 마치 지금 내가 산으로 가려고 차를 탔다는 기분으로.

이내 나도 뒤따라온 버스에 올라탔다. 비록 내가 올라탄 버스는 그들 부부와 다른 방향으로 가는 버스였지만 나는 그들 부부의 모습을 쉬이 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의문 하나를 지울 수가 없었다. 다리가 온전하지 않을 텐데 그렇게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산에 오를 수 있을까. 그러나 그런 생각도 잠시 아픈 다리를 이끌고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가는 그들 부부의 모습을 보았을 때 나의 생각은 잠시 잘못이었지 않았나 싶어졌다.

그들이 가볍게 산에 간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테고 또 그들이 무거운 장비를 가지고 산에 간다고 해도 산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아예 산에 들지 않는다면 산은 좋아할 것이지만 산에 조용히 들어 산의 품에서 놀다가 산을 떠나는 사람들에게 산은 그리 슬프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산에게 사람은 하나의 작은 자연. 산의 품에서 놀다 가도 그것은 하나의 작은 자연물이 널따란 산에서 보일 듯 보이지 않을 뿐. 산은 누구라도 자연스레 받아줄 것이기 때문이다.

온종일 나는 산으로 가는 한 부부를 생각했다. 그들의 표정이 행복해 보여 쉬이 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행복해 하는 부부의 모습을 최근에 보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말은 없었지만 산으로 가는 그들 부부의 표정, 그것은 자연에 들어 행복할 거라는 생각보다도 이미 그들은 자연에 들어 있고 또 산의 품에 들어 언제나 행복할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말 없는 표정이 산골짝에서 소살소살 구르는 물처럼 맑고, 초록빛 상큼한 잎사귀처럼 밝게 보였지 않나 싶다.

그래서 나도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들의 얼굴에 배어 나온 맑고 밝은 웃음은 불편한 다리가 문제 되지 않고 또 무거운 짐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로지 행복을 찾아가는 모습. 그 행복이 산에서 찾을 수 있다는 그들만의 느낌. 그것이 온종일 나로 하여금 행복하게 만든다. 마치 오래전 우리 조상들이 만들어 놓은 깨달음에서 배어나는 국보 78호, 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의 부드러운 미소. 그것을 보는 것 같은 기분. 그것은 산에 들어 행복하다는 것과 다르지 않은 기분. 그것이기 때문이다.

경제가 힘들고 지구온난화로 찌는 듯 덥고 가뭄으로 힘겹다. 적어도 그러한 일들을 잠시 잊을 수 있는 것이 산으로 가는 것이다. 산에서 행복한 시간을 스스로 선물하자.

경남과학기술대학교 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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