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 당시 미국은 원활한 군수물자 수송을 위해 ‘리버티(liberty)선’이라는 수송선을 대거 건조했다. 하지만 리버티선은 속도가 느린 데다 무장도 하지 않아 독일로부터 많은 피해를 입었다. 그 대안으로 건조된 수송선이 배 이름 뒤에 빅토리(victory)라는 일련의 단어가 붙은 ‘빅토리선’. 한국전쟁에서도 활약한 메러디스 빅토리호, 레인 빅토리호, 레드오크 빅토리호, 아메리칸 빅토리호 등이다.

화물을 나르는 수송선이라지만 메러디스 빅토리호와 레인 빅토리호는 우리에게 의미가 각별하다. 나머지 빅토리호가 수송선 본연의 임무에 충실했다면 이 두 빅토리호는 1950년 12월 흥남 철수 당시 수많은 생명을 살린 인연 때문이다. 특히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기적의 배’라는 책으로 출간되고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을 구조한 배로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잘 알려져 있다. 흥남 철수 당시 제일 마지막에 출발하면서 1만4000여 명의 피란민을 싣고 무사히 경남 거제에 도착했으니 기적이라고 할 만도 하다.

메러디스 빅토리호 때문인지 레인 빅토리호의 명성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배 또한 메러디스 빅토리호에 앞서 7000여 명의 피란민을 흥남에서 구해낸 또다른 주역으로 꼽힌다. 한국전쟁에 이어 베트남전쟁에서도 활약한 레인 빅토리호는 1989년 퇴역, 미국 LA 샌페드로항에서 역사박물관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흥남 철수 기념사업을 추진 중인 경남 거제시가 몇 년 전부터 이 배의 인수를 추진해 왔다. 역사적 의미로는 메러디스 빅토리호가 더 크지만 1993년 중국에 고철로 판매된 탓이다.

그간 지지부진하던 레인 빅토리호 인수 작업이 다시 본격화되는 모양이다. 민간단체인 ‘레인 빅토리호 한국인도 추진단’이 조만간 비영리법인을 설립, 본격 인수 활동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정부와 민간의 지원을 받아 국내에 들여와 평화기념공원을 조성할 계획으로, 장소는 피란민이 도착했던 거제가 유력하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방미 기간 메러디스 빅토리호를 타고 흥남서 거제로 온 부모님 사연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 역시 레인 빅토리호 인수 작업 본격화의 한 계기가 됐을 터. 어쨌든 대통령의 개인적인 사연을 떠나 여러 모로 의미 있는 작업임은 분명하다. 이참에 정부와 거제시, 그리고 민간이 힘을 합쳐 돌아온 레인 빅토리호를 하루빨리 거제에서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장재건 논설위원 jj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