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을 잊을 만한 시간여행을 한 번 해보는 건 어떨까. 여행지는 전북 김제시 새만금간척지에서 170여 년 전 미국 매사추세츠주 콩코드로 거슬러 올라가는 코스다. 장소가 구체적인 만큼 당연히 주제도 설정된다. 주제는 인물과 결부돼 있다. 전직 교사 최낙효(63) 씨와, 인도의 성자 마하트마 간디가 “위대한 스승”이라고 칭송한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그들이다. 두 사람은 ‘국가폭력’이란 공통분모로 포개진다. 주제가 다소 무겁지만 의미는 심장하다. 우리 현대사를 관통하는 적폐 중 하나여서다. 마침 올해는 소로우 탄생 200주년이 아닌가. 소로우에게서 적폐 청산의 지혜를 구하는 테마 시간여행을 떠나 보자.

먼저, 최 씨의 사연부터 들여다본다. 그는 소로우 생일 전날인 지난 11일 오후, 새만금간척지 갈대밭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죽음의 씨앗은 1982년에 뿌려졌다. 농부였던 그의 아버지 최을호 씨가 그해 조카 낙전.낙교 씨와 함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되면서다. 북한에 나포됐다가 돌아온 뒤 두 조카를 포섭해 20여 년간 간첩 활동을 했다는 혐의였다. 이른바 ‘김제 가족 간첩단 사건’이다. 하지만 실상은 40여 일에 걸친 불법 감금과 고문수사로 꾸며낸 간첩 조작 사건이었다. 날조의 주인공은 악명 높은 ‘고문 기술자’ 이근안이다. 기소 내용상 1966년 북한에서 받았다는 남한 지폐 ‘1000원권’의 최초 발행연도가 1975년이거나, 1959년 북측과의 접선 포인트로 선정했다는 집 뒷산 묘비의 건립 연도가 1977년으로 확인되는 등 조작 흔적이 역력했다.

그런데도 대법원까지 유죄 판결이 이어져 을호 씨는 결국 사형을 당했다. 고문 탓인지 낙교 씨는 구치소에서 숨졌고, 9년 감옥살이 끝에 석방된 낙전 씨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충격을 받은 낙효 씨는 교직을 그만둔 뒤 정신병원을 전전하며 폐인이 되어 갔고, 가족은 빨갱이 집안으로 낙인 찍혀 떠밀리다시피 고향을 떠났다. 누명을 벗은 건 34년이 흐른 지난달 29일 재심에서였다. 뒤늦게 간첩 조작 사실을 인정한 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무죄 판결문을 들고 고향의 선친 묘소를 찾은 낙효 씨는 잔인한 세월에 쇠진했는지 어릴 적 놀던 갈대밭에서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낙효 씨 가족에게 국가는 보호자가 아니었다. 선량한 국민을 간첩으로 모는 야만적인 폭력기관일 따름이었다.

우리 현대사는 이처럼 분단체제를 빙자한 국가폭력으로 얼룩져 있다. 1959년 조봉암 사건, 1964.1974년 인혁당 사건, 1975년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 등 고문에 의한 간첩 조작은 독재정권 시절에만 그치지 않았다. 2013년 발생한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에서는 피의자의 여동생을 6개월간 가둬놓고 고문해 허위자백을 받아내기도 했다. 종북몰이는 일상화된 지 오래다. 박근혜 정권의 블랙리스트 사건도 그 연장 선상에 있다. 인권을 파괴하는 국가폭력은 국가보안법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국민의 자유를 국가보안법으로 재단해 옭아매고 있다는 얘기다. “국가보안법을 개정하거나 폐지하지 않는 한 민주주의가 성립할 수 없다. 모든 국민이 국가보안법의 피해자라는 자각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자유와 인권 신장을 위한 중대 기로에 선 셈이다.

소로우는 어떻게 했을까? 그는 1846년 콩코드 월든 호숫가에 통나무집을 짓고 은거할 때 한 날 구두를 고치러 마을에 내려갔다가 붙잡혀 감옥에 갇혔다. 미국 정부가 흑인 노예제도를 유지하는 데다 영토 확장을 위해 멕시코와 전쟁까지 일으킨 데 대한 저항의 표시로 인두세(人頭稅) 납부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유는 명쾌하다. “국가의 권력과 권위는 개인의 힘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인정하고, 이에 알맞은 대접을 개인에게 해줄 때까지는 진정으로 자유롭고 개화된 국가는 나올 수 없다.”(‘시민의 불복종’) 국가의 근본인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폭력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소로우는 한 친척이 그가 모르게 세금을 대납해주면서 입감 다음 날 풀려났지만, 이 경험을 계기로 개인의 자유와 국가 권력의 관계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하게 된다. 그 결과가 활자화된 게 ‘시민의 불복종’이다.

“노예제도 폐지론자로 자처하는 사람들은 몸으로나 재산으로나 매사추세츠주 정부를 지원하는 일을 당장 중지해야 한다.” 소로우는 실천을 강조했다. “두려움만큼 두려워해야 할 것은 없다. 하느님이 미워하시는 죄악은 두려움이다. 그에 비하면 무신론은 순진하다고 하느님은 생각하신다.” 1851년 9월 7일의 일기에서는 스스로에게 실천을 위한 용기를 불어넣기도 했다. 올 여름휴가 때는 소로우처럼 숲속을 거닐며 자유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도 좋겠다. 소로우가 만끽했던 “연자맷돌 같은 도시 생활로부터 해방된 삶”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