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헌절 69주년이다. 1948년 7월 17일 이승만 대통령은 그 닷새 전에 국회를 통과한 제정헌법에 서명하고 공포했다. 이로써 우리나라 국민은 자신의 손으로 만든 민주공화국의 헌법을 갖게 됐다. 그로부터 모두 9차례 헌법 개정이 있었다. 현행 9차 개정헌법은 1987년 6·10 민주항쟁의 결과로 탄생하여 30년째 국가운영의 기본 틀로 자리 잡고 있다. 우리가 헌법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 계기는 지난해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와 올해 3월 10일 헌법재판소의 현직 대통령 파면이다.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해도 대의 민주제의 원리와 법치주의 정신을 훼손한다면 헌법을 수호하기 위해서 파면이 불가피했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은 정치사적으로는 불행한 일이나 민주주의의 성숙에는 새로운 이정표가 됐다.

지난 5월 10일 출범한 문재인 정부도 어느덧 70일이 다 되어간다.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응급조치식으로 대선이 치러졌고, 그러다 보니 여도 야도 모두 정권출범 초기 시행착오가 있었고 조율이 덜 된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정치를 복원해가면서 국민에게 편안함을 주어야 할 때다.

솔직히 지금 대한민국은 칼날 위에 선 것만큼이나 위태로운 형국이다. 우선 북한의 핵과 ICBM 개발이 한반도를 전쟁 일보 직전의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 미국의 한미 FTA 재협상 압력, 중국의 사드 보복은 우리를 더욱 옥죄고 있다. 더군다나 한수원의 신고리5·6호기 원전 건설 일시 중단을 계기로 현 정부의 일방통행식 국정 운영행태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물론 반년이 넘는 국정 공백의 빈틈을 메우고 빠르게 국가경영을 정상화하기 위해서 빠른 행보가 필요했을 수는 있다. 하지만 미국 대통령의 헌법에 근거한 ‘행정명령’과는 전혀 다를 수밖에 없는 행정 수반으로서 대통령이 내리는 제한적인 ‘업무지시’로 국가의 백년대계까지 무 자르듯 처리하는 것은 자칫 대한민국 헌법 정신을 훼손할 수도 있다.

핫이슈인 11조2000억 원 추가경정예산도 그렇다. 헌법 56조에 의거, 정부는 추경을 편성·제출할 수 있다. 하지만 추경은 국가재정법에 따라 제한적·일시적 응급처방이어야 한다. 쟁점이 되고 있는 공무원의 1만2000명 증원(향후 5년 동안 17만 명)은 국민에게 천문학적인 부담을 강요한다. 그래서 본예산에서 종합적으로 다루어야 한다. 그럼에도 대통령의 공약사항이기 때문에 무조건 처리하겠다고 든다면 이 또한 헌법의 기본 정신을 해칠 수 있다.

마침 19일 대통령과 5당 대표의 청와대 오찬회동이 있다고 한다. 얼마 전 야 3당의 새로운 지도부가 구성됐다. 문재인 정부는 짧게는 내년 지방선거까지, 길게는 2년을 미우나 고우나 이들과 함께 국사를 논의하면서 국정을 이끌어가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오찬 회동을 의례적인 상견례 성격의 만남을 넘어 상생과 타협의 대화정치를 복원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우선 보수 야당은 문재인 정부에 대해 갖고 있는 의구심을 솔직히 털어놓고 물어볼 필요가 있다. 막연하게 의심하고 불신의 골을 깊게 할 이유가 없다. 문 대통령이 향후 어떤 그림을 갖고 국민통합과 국가 성장의 과제를 처리해 나갈지 파악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도 정히 못 받아드릴 부분이 있으면 그에 대한 분명한 반대와 구체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대통령도 자신의 정치철학과 국가경영의 방향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하고 야당의 협조를 구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여소야대와 국회선진화법이 엄존한 현 20대 국회와 3년을 동거해야만 하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또 현 집권세력은 촛불혁명과 촛불민심을 이야기하면서 국회와 야당을 압박하는 모습을 간혹 보이곤 하는데 이는 위험하다. 대의 민주제라는 헌법의 기본 원리와 상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제헌절을 맞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민주주의의 요체는 3권 분립을 통한 견제와 균형에 있다는 기본 상식을 다시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전임 박근혜 정부의 실패를 통해 9차 개정헌법에 터 잡은 현행 87체제가 한계에 이르렀음이 분명해졌다. 사람의 문제도 문제지만 더욱 심각한 것이 이제는 시대에 뒤떨어진 국가경영의 틀이라면 헌법 개정은 더 미룰 수 없는 불가피한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이번 대통령과 5당 대표의 회동에서 내년 지방선거 때 개헌을 이루어내기 위해서 보다 분명한 방향과 구체적인 로드맵에 대한 합의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치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