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4학년 아들이 학교에 갔다 오더니 입이 나왔다. 체육 시간에 피구를 했는데 아이들이 자신에게는 공을 주지 않아서 한 번도 던져보지 못했다고 툴툴댔다. 혹시나 아이가 따돌림당하는 건 아닌가 싶어 마음이 철렁했다. 찬찬히 물어보니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시무룩한 얼굴로 자신이 운동을 잘하지 못해서 자신에게는 기회가 안 주어진다고 했다.

다른 반과 시합을 하니 이기고 싶은 마음에 그럴 수 있다 싶다가도 아이가 기분이 가라앉아 있으니 덩달아 속상해졌다. 잘하지 못한다고 아예 공조차 주지 않는다니. 이러면서 세상일이 제 마음대로만 안 된다는 걸 깨닫는 기회가 되려나 하고 무심히 지나가야 할까 하는 생각과 그래도 친구들이 너무한 게 아닌가 하는 섭섭한 생각이 번갈아 들었다.

며칠 뒤에는 체육 시간에 농구를 했는데 이날도 한 번도 공을 못 잡아봤다고 툴툴댔다. 농구를 잘해서 경기를 주도하는 친구가 자신에게 공을 주지 못하게 했다는 거였다. 정작 아이는 몇 분 뒤 다 잊어먹은 눈치였지만 뒷맛이 썼다. 미리 운동을 가르쳤어야 하는 걸까 후회도 들었다. 그러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농구 과외를 검색했다. 설마 나 같은 사람이 있을까 했는데 뜻밖에 부산에서 진행하는 수업을 발견할 수 있었다.

최근에 농구 과외를 받는 아이들이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읽으면서 ‘굳이 이렇게까지…’ 라며 부모들이 참 극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런 엄마가 나였다. 아이가 친구들 사이에서 운동 못하는 애로 이미 결정이 나서 경기에 같이 끼워주지도 않는다니 화가 났다. 해결책으로 그렇다면 과외를 붙여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떠오른 거다. 우리 아이는 초등학교에 갈 때까지 어린이집에서 놀이처럼 하는 미술이나 피아노 외엔 다른 사교육을 받질 않았다. 그때부터 잘못된 걸까.

일하는 엄마의 죄책감이 사교육을 먹여 살리는구나, 한숨이 나왔다. 수많은 매체에서 육아 전문가들은 일하는 엄마에게 미안해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엄마는 아이에게 일어나는 작은 일도 다 자신에게 책임이 없는지 돌아보게 된다. 남편에게 어떻게 생각하느냐니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일축한다. 아이가 뭔가를 어려워하거나 못할 때마다 과외를 시킬 거냐고. 주말에 자신이 같이 놀아주면서 몇 번 해보면 된다고 대수롭잖게 대응한다.

하지만 아이의 실력이 금방 느는 것도 아니고. ‘배워둬서 나쁠 게 없잖아’라고 항변하다 번뜩 정신이 들었다. 영어나 수학은 효율적으로 잘 못 가르치니 학원에 보낸다 치자. 운동은 아이와 같이 놀이터나 학교 운동장에만 가도 해결되는 일인데. 그걸 돈으로 살 생각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하고 있었다. 과외를 하는 사람의 선택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단지 아이가 어려워하면 엄마가 선생을 붙이고 시간과 돈을 들여 가르치는 일이 너무나 당연하게 된 게 문제다.

자녀가 성인이 되어서도 주변을 뱅글뱅글 돌면서 일거수일투족을 보살펴주는 부모를 헬리콥터 부모라고 한다. 회사 입사 후 자녀가 야근이 잦아 피곤해하자 엄마가 회사로 전화해 우리 아이 피곤하니 퇴근 시간을 지켜줬으면 좋겠다고 했단다. 소문 같은 괴담이지만 이대로 타성에 젖었다가는 나도 이렇게 되지 말란 법이 없다 싶으니 정신이 들었다. 돈과 포털 사이트 검색 대신 아이가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기다려 주는 곧은 심지부터 키워야겠다.

스포츠레저부 차장 jador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