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인도의 신비주의 사상을 담은 문헌인 ‘베다(veda)’의 정수는 ‘우파니샤드(upanisad)’다. 산스크리트어 어원을 분석하면, ‘옆에(upa)’ ‘확실하게(ni)’ ‘앉는 것(sad)’이라는 뜻이다. 제자가 스승 곁에 바짝 다가앉아 가르침을 받는다는, 사제간에 이뤄지는 사상의 비전(秘傳)을 말한다. 선불교에서 선승이 전법(傳法)의 표시로 자신의 가사와 바리때를 후계자에게 전하는 것에 비견된다.

그런데 베다는 ‘브라만(성직자)’-‘크샤트리아(귀족·무사)’-‘바이샤(상인·농민)’-‘수드라(천민)’로 내려오는 인도 계급사회(카스트)에서 지배계급의 전유물이었다. 카스트의 밑바닥인 수드라나 카스트에도 끼지 못하는 최하층 계급인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untouchable) ‘달리트(억압받는 자)’가 베다를 볼 경우 눈을 뽑고, 들으면 귀에 유리조각을 박았으며, 읊을 땐 혀를 자르는 등 가혹하게 처벌했다고 한다. 나라를 다스리는 지식과 지혜가 피지배계급에 전파되지 않도록 철저히 차단해 카스트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1947년 인도 독립 후 마하트마 간디를 비롯한 사회개혁 운동가들이 달리트에 대한 차별 철폐를 위해 노력하면서 명칭이 ‘하리잔(신의 자식)’으로 바뀌고 헌법에 공공부문 고용할당도 명시됐다. 여전히 카스트의 벽이 높고 두껍지만, 그런 노력 덕분에 카스트에 생긴 균열이 조금씩 커지고 있다. 그 결과의 하나가 달리트 출신의 람 나트 코빈드 인도국민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다. 1997년 대통령으로 뽑혔던 코테릴 라만 나라야난에 이어 두 번째다.

인도의 변화는 우리에게 큰 시사점을 던져준다. 우리 사회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대별되는 ‘한국판 카스트’가 뿌리를 내리고 있어서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2016년 기준으로 국내 남자 정규직 임금을 100이라 할 때 여자 정규직은 이의 69.4%, 남자 비정규직과 여자 비정규직은 각각 53.1%와 35.8%로 나타났다. 최근 한 야당 국회의원이 학교 급식을 담당하는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지칭했던 “밥하는 아줌마”라는 비하 발언에선 카스트를 기정사실화하는 듯한 의식마저 느껴진다. 소득 격차가 대물림되는 경향을 보이는 것도 이를 뒷받침하는 요인이다.

그제 ‘좋은 일자리(정규직) 만들기 추가경정예산안’이 오랜 논란 끝에 국회를 통과했다. 이 추경예산이 굳어가는 카스트에 균열을 내는 쇠망치가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