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단상.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했다. 고대 로마인들은 기원전 500여 년 동안 점령하는 곳마다 길을 만들었다. 서쪽으로는 지금의 스페인 영국 독일 등 거의 유럽 전체로, 동쪽으로는 터키 아라비아반도 북아프리카까지 길은 로마로 이어졌다.

잘 닦여진 로마가도라는 길 덕분에 각 지역을 연결하기가 쉬워져 물건을 사고파는 교역이 발달했다. 전 세계의 사상과 기술, 문화가 활발히 교류했다. 이집트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 유럽과 아프리카 문명이 로마에서 만났다. 이렇게 해서 로마라는 새로운 문명이 만들어졌다. 바로 지금 유럽 문화의 기초다. 로마는 동과 서로 나뉜 뒤에도 서로마 제국이 476년까지, 동로마 제국이 1453년까지 거대한 영토와 다양한 민족을 거느렸다. 로마는 인류가 만든 가장 찬란한 문화를 가진 위대한 제국으로 꼽힌다.

이런 이유에서 ‘로마인이야기’를 쓴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 문명의 진정한 위대함이 인프라에 있다고 봤다. 그녀는 로마인을 ‘인프라의 아버지’라고 불렀다. 인프라가 나라와 도시의 흥망성쇠를 가늠한다고 본 것이다.

두 번째 단상. 대한민국의 길은 서울로 통한다. 그물망 같은 수도권 전철은 이제 경기도를 넘어 강원도 춘천과 충청남도 아산까지 운행되고 있다. 이것도 모자라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가 건설된다. 느린 전철의 속도를 보완하기 위해서란다. 노선은 고양 킨텍스∼동탄신도시, 의정부∼군포·금정, 인천 송도∼청량리 등 3개로 총 145.5㎞나 된다. 기존 수도권 지하철이 지하 20m 내외에서 시속 30∼40㎞로 운행되는 것에 비해 GTX는 지하 40∼50m의 공간을 활용해 노선을 직선화하고 시속 100㎞ 이상으로 운행하는 신개념 광역교통수단이다. GTX가 건설되면 경기도는 서울 중심까지 30분 이내에 도달할 수 있다. 이 새로운 길은 또 사람을 수도권으로 끌어모을 것이다.

게다가 경기 남부의 수원 용인 화성시는 벌써 인구 400만 명을 바라보는 광역경제권을 형성하고 있다. 중국과 직항로가 열려 있는 컨테이너 항만인 평택항이 인접한 데다 경부고속도로 수원문산고속도로 수도권제2순환고속도로 용인서울고속도로 등 서울로 통하는 사통팔달의 도로망을 갖추고 있다. 분당선과 신분당선, 서울 1호선 등 전철이 운행 중이거나 연장될 예정이고 GTX역도 계획돼 있다. 삼성전자 타운이 형성돼 있는 지금도 대규모 산업단지가 건설되고, 기업들이 공장을 짓고 있다. 3개 시가 힘을 합쳐 새로운 서울을 건설하고 있는 형국이다.

세 번째 단상.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2002년 부산 금정구 노포동과 경남 양산시 동면을 잇는 지방도 1077호선에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양산구간은 그해 12월 공사가 마무리돼 왕복 4차로로 넓혀졌다. 문제는 부산 구간. 승용차가 겨우 교행할 수 있을 정도의 산길이 그 후 5년간이나 방치됐다. 표면적인 이유는 예산부족. 이면에 깔린 속사정은 도로가 좋아지면 양산으로 인구가 유출될 것이란 우려였다. 당시는 부산의 중소기업과 인구가 땅값이 저렴한 양산으로 옮겨가는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하던 때였다. 더욱이 금정구는 지금 해운대처럼 집값이 부산 최고인 주택가가 몰려 있던 곳이었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 현상에 고민하던 부산 입장에서는 양산으로 통하는 길을 조기 개통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부산 구간의 도로 확장 포장 공사가 완료된 것은 2008년 1월. 그 사이에도 부산은 기업과 인구가 양산 김해 등지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 첨단산업 유치 등 산업구조 재편에 실패한 탓이다. 먹고 살 밥그릇이 많지 않은데, 물리적으로 사람의 이동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최근 경남지역에서 다시 논란인 비음산 터널 개설 문제를 보면서 떠올려 본 짧은 생각들이다. 비음산 터널은 경남 최대 도시인 창원시(106만 명)와 제2 도시인 김해시(53만 명)를 잇는 제3터널이다. 두 도시는 동일 생활권으로 분류되지만, 경계지점에 불모산과 비음산이 가로막혀 있어 도로 사정이 나쁘다. 두 도시를 직접 연결하는 도로는 창원터널 불모산터널 2곳이다. 나머지는 불모산을 우회하는 좁은 도로거나 고속도로다. 그래서 추진된 게 비음산 터널 사업이다. 하지만 창원은 반대하고 김해는 찬성하며 맞서고 있다. 그것도 10년 동안이나. 논란은 대략 비음산 환경 훼손, 창원 방면 도심 교통체증, 창원 인구의 김해 유출 등으로 요약된다.

그래서 떠올려 본 게 인프라의 활용이다. 대기업이 많은 창원과 중소기업 위주의 김해를 잘 엮으면 상생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 본다. 그런데 너무 나갔나. 로마 서울 등을 운운한 게. 과장된 비유는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숨겨진 의도가 있어 한 말은 아니다. 인프라의 중요성을 말하고 싶었던 것뿐이다. 터널 공사로 예상되는 환경 훼손 문제를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에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경남취재본부장 sbjung @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