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미국인이 가장 싫어하는 인물은 막말 하는 정치인도 개념 없는 연예인도 아닌 ‘파티맘’ 케이시 앤서니였다. 이해 8월 나온 여론조사 결과다. 그녀는 앞서 두 살배기 딸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가 ‘무죄’로 풀려났다. 그녀는 딸을 돌보기보다 술과 춤, 남자 친구를 즐기는 파티맘이었을 뿐만 아니라 재판 과정에서 갖은 변명을 늘어놓아 공분을 샀다. 하지만 배심원단이 목격자 등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살해 혐의에 대해 무죄 평결을 내렸다.

이른바 ‘파티맘 사건’은 재판 과정이 생중계됐다. 미국은 전설적인 풋볼 스타였던 O.J. 심슨의 전처 살해 여부를 가리는 재판처럼 1, 2심의 생중계를 허용하는 나라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취임 전 미국에서 이를 지켜보며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2011년 9월 대법원장이 된 그는 이듬해 1월 국민적 관심이 높고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사건은 재판 과정을 TV로 생중계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파티맘 사건’을 예로 들며 재판 과정이 공개되지 않고 잘못 설명될 경우 국민에게 사법부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줄 수 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런 흐름은 2013년 3월 대법원이 사상 처음으로 재판을 생중계하는 시도로 이어졌으나 하급심은 진척이 없었다. 밀실재판을 없애고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해야 한다는 주장과 무죄추정의 원칙에 배치되고 사생활 침해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맞부딪힌 결과로 보인다. 현행 ‘법정 방청 및 촬영 등에 관한 규칙 개정안’은 재판 과정의 녹음 녹화 중계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단 한 차례 2014년 광주지법의 세월호 참사 재판에서 예외가 있었다.

대법원이 이 규정을 고쳐 1, 2심 재판에서 TV 생중계를 허용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판사 3명 중 2명꼴로 재판장 허가에 따라 재판 일부 또는 전부를 중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당연히 구체적인 허용 범위와 적용 상황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지난 20일 양 대법원장 주재로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회의에서 이를 결정하지 못했으니 오늘 회의에서 어떻게 갈피가 잡힐지 지켜볼 일이다. 당장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 농단 재판을 생중계로 지켜볼 수 있는지 여부가 달렸다.

‘21세기 인민재판의 부활을 우려한다’는 자유한국당 주장은 공허해 보인다. 세상이 이렇게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상도 논설위원 jsdo@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