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나는 여름방학을 맞이한 다섯 명의 학생을 인솔해 독일 여행을 함께했다. 오후 1시경 인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우리 시간보다 7시간이 늦은 프랑크푸르트 마인 공항에 오후 6시경에 도착했다. 꼬박 12시간 이상이 걸린 셈이다. 우리의 목적지는 독일 북부의 항구도시 함부르크에서 시작해 다시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오는 여정이라 특급열차(ICE)로 4시간 이상을 더 가야 했다.
초저녁에 출발한 열차는 북쪽의 드넓은 평야를 가로질러 함부르크에 가까워지면서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함부르크 중앙역 도착 즈음엔 열차의 창문에 비가 뿌려 방울이 되어 내려앉았다. 숙소로 정한 유스호스텔까지는 중앙역에서 지하철로 30분이 더 걸렸다. 늦은 밤 도착해 허기를 면한 일행은 낯선 이국에서 맞는 설렘도 잠시 모두 깊은 잠에 빠졌다.

간밤에 내렸던 비는 그쳤고 피곤했을 텐데 맑게 갠 아침 햇살처럼 모두 밝은 표정으로 아침을 맞이했다. 처음 방문지는 함부르크 대학 스포츠의학 연구소였다. 반갑게 우리를 맞이한 브라우만 교수는 마침 실험이 진행되고 있던 운동부하검사실로 안내했다. 실험실엔 연구원 몇 명이 땀을 흘리며 고정식 자전거의 페달을 열심히 돌리는 한 중년 남자에 집중하고 있었다. 중년 남자의 가슴과 하복부 좌우에 붙인 전극을 따라 긴 전선이 컴퓨터와 연결됐다. 모니터에는 일정한 곡선의 심전도가 주기적으로 그려졌다. 한편에선 중년 남성의 피로를 가늠하는 혈중 젖산 농도의 관찰도 진행되었다. 우리 일행에게도 익숙한 광경이었다. 심장초음파와 근관절기능 그리고 체형검사 실에선 우리 일행의 한 친구가 직접 실험대상자로 참여했다. 그 친구는 즉석에서 척추측만증 판정과 수년 내 요통 발생 주의 통보까지 받았다.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이를 무시한 그 친구는 놀랍게도 요통으로 한동안 고생했다고 하였다.

대학을 둘러본 우리는 터빈이 설치된 외부의 수영 실험 풀로 갔다. 그곳은 유속으로 저항을 조절해 수영 선수들의 과학적 트레이닝을 관리하는 곳이었다. 실제 우리가 방문하기 한 주 전 7월 로마 세계수영선수권대회 200m와 400m 자유형에서 세계기록을 갈아치운 폴 비더만 선수를 배출한 곳이라고 관리인은 자랑했다. 순간 2008년 베이징 올림픽 400m 자유형 금메달리스트 박태환 선수도 이런 환경에서 관리했는지 궁금해졌다.

3일째 우리는 1980년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했던 차범근 선수가 축구 지도자 과정을 밟았다는 쾰른 체육대학 축구교실에 갔다. 아직도 차붐(차 선수 애칭)의 숨결이 남아 있는 듯 관리인은 그의 고국에서 온 우리를 반겼다. 차붐의 친구들이 독일 전역에서 지도자로 활동한다는 묻지도 않은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그래서 다음 날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경기장(Wald Stadion)에 갔다. 그가 말한 차 선수의 동료도 만났다. 늦은 오후 경기장에선 학교 수업을 마치고 온 유소년의 축구 수업이 한창이었다.

그곳은 마치 ‘스포츠 천국’ 같았다. 거대한 숲 속 곳곳에 들어선 스포츠타운에 축구경기장뿐만 아니라 헤센주 체육회와 축구협회 그리고 육상 등 각 종목의 가맹단체, 스포츠의학연구소와 숙박시설까지 갖춘 스포츠학교였다. 시설의 이용은 선수와 일반인을 구분하지 않았다. 다만 지도자의 연수, 자격과정 등 연중 진행되는 교육프로그램만 필요에 따라 구분하고 있었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스포츠 천국을 경험하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우리도 선수와 함께 일상에 지친 일반 국민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활용하자면 사치라 비난받을까?

인제대 스포츠헬스케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