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직장인에게 열심히 일하는 이유를 물으면 대개 이런 답이 돌아온다. 땀 흘려 모은 돈으로 여름휴가 때 해외여행을 가기 위해서라고. 북유럽 사람들은 그 욕구가 훨씬 강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뀌는 변덕스러운 날씨를 피해서 따뜻한 나라로 여행 가길 원한다. 휴가기간도 길다. 한 달은 예사이고 심지어 몇 달씩 휴가를 떠난다. 꼭 여름철이 아니어도 장기간 휴가를 내고 해외로 갈 수 있는 풍토다.

얼마 전 몽골에 업무차 갔다가 만났던 유럽인의 상당수는 그런 여행객이었다. 그중 독일의 50대 직장인은 무려 두 달간 휴가를 내고 가족과 함께 동아시아 일대를 주유(周遊)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행복과 자유, 에너지가 넘쳐 보였다.

우리나라 사람은 세계에서 ‘일벌레’로 이름나 있다. 노동시간이 최다 수준이다. 반면 휴가를 잘 가지 않고 자유롭게 쉬지 못한다. 국내 임금근로자가 쓸 수 있는 연차휴가는 평균 15.1일인데 실제 사용은 7.9일로 나타났다. 윗사람이나 동료 눈치가 보이고, 업무가 많아서다. 한국인 10명 중 7명은 휴가 사용에 죄책감을 느낀다고 답할 만큼 휴가문화가 경직돼 있다. 여름휴가도 마찬가지다. 1주일 정도의 단기 휴가가 관행으로 돼 있다. 1주일 휴가조차 ‘언감생심’인 곳도 수두룩할 터이다. 만일 2주일 휴가를 간다고 하면 회사 그만두겠다는 뜻으로 비치기 쉽다.

이른바 ‘일리히의 법칙’이란 게 있다.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사회사상가이자 철학자인 이반 일리히의 이름을 딴 것이다. 그는 고전 경제학의 ‘수확체감의 법칙’이 인간행위에도 적용된다고 설파했다. 즉, ‘인간의 활동은 어느 한계를 넘어서면 효율이 감소하고 더 나아가 역효과를 낸다’. 노동량을 늘리면 어느 선까지는 생산량이 증가하겠지만 한계를 초과하면 그 효과가 없고 되레 스트레스만 주게 된다는 뜻이다.

지금같은 우리의 휴가문화는 바람직하지 않다. 열심히 일하되 제대로 쉴 수 있도록 하는 게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는 길이다. 6박7일 휴가에 들어간 문재인 대통령은 ‘쉬어야 경제가 산다’며 자신의 연차휴가를 다 쓰겠다고 공언했다. 장관과 공무원에게도 휴가를 독려하고 있다. 하지만 관료사회에서만 그런다고 될 일이 아니다. 휴가는 노는 게 아니라 재충전이라는 인식 전환이 사회에 필요하다. 또 연차휴가를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권리를 강화하는 게 옳다.

구시영 논설위원 ksyo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