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다 더워. 지난 7일 가을의 문턱에 들어선다는 입추를 지났건만, 더위의 기세는 가라앉을 조짐을 보이지 않는다. 전통적으로 광복절을 지나면 한풀 꺾일 테지만, 아직도 밤잠을 설치게 하는 더위가 영 성가시다. 한낮에는 한데서 잠시라도 움직이는 것조차 질색이다. 그래도 맹위를 떨치는 여름 더위야 한철이면 끝나기 마련이다.

슬슬 찬바람 부는 계절 맞이에 나서자. 짧지만 긴 여운을 남기는 가을이 그리운 사람들은 설렌다. 사연 많은 가을 노래가 곳곳에서 흘러나올 시기가 눈앞에 있다. 낭만의 계절이 주는 묘미를 만끽하려는 사람들은 벌써 부산하게 움직인다. 활기가 넘친다는 말이다. 다가오는 계절은 항상 한 계절 앞서 생동감을 발휘하는가 보다.

올가을에는 세상도 부산스럽게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새 정부의 개혁 드라이브가 속도를 내든지, 아니면 곳곳의 저항과 맞물려 제동이 걸릴지 판가름 날 수도 있다. 부산스럽다는 말은 ‘보기에 급하게 서두르거나 시끄럽게 떠들어 어수선한 데가 있다’는 뜻이다. ‘정신이 어지럽거나 마음이 뒤숭숭하여 갈피를 잡을 수 없다’는 뜻도 있다는데, 우리 고장 지명이 붙었다는 게 영 마뜩잖다. 부산 사람은 필요 이상으로 요란하고 시끄럽다는 말인지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다.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굳은 언어의 사회적 함의에 시비를 걸 계제는 아니다. 실제 부산의 지명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토종언어일 뿐이다.

오는 가을에는 부산도 부산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 걸쳐 한바탕 소동이 일어날 시점인 탓이다. 부산스러운 소동이 가라앉을 만하면 세상은 변화의 기미를 보이겠지.

정치권 인사들은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미 부산을 떨고 있다. 가을에는 지방권력을 사수하려는 야권과 지난 대통령 선거의 승리 여세를 몰아 이번 참에 지방권력까지 차지하겠다는 여권 세력의 싸움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지방권력의 정점인 부산시장을 비롯해 일선 기초단체장에다 광역의회와 기초의회까지 포함하면 적지 않은 자리가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그만큼 수많은 인사가 크든 작든 지방권력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중심권으로 편입하려고 군침을 흘리고 있다니 소란스러울 법하다. 여야 세력 판도까지 예전과 다른 변화의 물결을 타고 있어 정치권 안팎이 물밑 요동을 치는 형국이다.

기업계를 대표하는 부산상공회의소 회장 자리도 내년 3월 바뀌는지라, 이런저런 연유로 부산상의와 얽히고설킨 기업인들이 재빠르게 움직이는 모양이다. 부산상의 회장을 맡아 지역 경제를 위해 최소 3년, 길면 6년(연임 시)간 공헌하겠다는 인사들은 가을 해가 짧기만 할 것 같다.

경제계는 물론 지역 주민에게도 막대한 영향력을 지닌 BNK금융그룹은 새 옷을 갈아입고 가을맞이에 나선다니 주목된다. 금융그룹 회장을 새로 선임한 데 이어 대표 금융사인 부산은행의 새 행장까지 뽑아 기업 이미지를 쇄신할 수밖에 없다고 하니, 지역 경제 지형도에 엄청난 변화가 예상된다.

지역 사회는 가을 국회 때 여야 의원의 입맛이 맞아떨어져 ‘엘시티 특검’이 성사된다면 또 한 차례 홍역을 치를 수도 있다. 지난해부터 부산을 뒤흔든 ‘엘시티 사태’에 연루된 인사들의 1심 재판이 마무리되는 시기에 불쑥 특검 카드가 날아와 예상치 못한 결과가 불거질지 숨죽여 지켜보는 사람이 적지 않겠다. 낭만은커녕 절망의 계절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힌 인사들은 없는지 모르겠다.

부산 문화계의 대표 아이콘이라는 부산국제영화제(BIFF)는 이번 가을 갈림길에 서 있다. 매년 이맘때면 BIFF의 콘셉트와 초청작 규모 등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이야기가 연일 쏟아졌건만, 올해는 존재감을 찾기 어렵다. 한때는 과도한 행정지원과 시민 관심 집중으로 “부산문화에는 영화밖에 없느냐”는 식으로 타 장르 문화 인사들의 질시를 받을 정도로 이런저런 화제를 몰고 왔지만, 이제는 문화계에서조차도 잊힌 행사가 될까 우려스럽다는 말이 나돈다. ‘표현의 자유 침해’니 ‘로열패밀리 잔치’니 등 요란했던 프레임 싸움의 내막을 따질 상황도 아니다. 속내는 알 수 없지만, BIFF 조직을 이끄는 두 수장인 이사장과 집행위원장은 이번 영화제를 치른 뒤 사퇴하겠다는 의사까지 밝혀 이래저래 문화계는 심란하다. ‘영화의 도시’ 부산의 상징성이 계속 이어질지 두고 볼 일이다.

가을이 여름을 밀어낼 준비를 하고 있다. “아니 벌써 가을인가.” 이 말이 곧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미 시작된 곳곳의 부산스러운 움직임은 더욱 속도를 낼 전망이다. 부산스럽다는 말은 ‘활기가 넘친다’고 바꿔 풀이할 수 있으니, 계절이 바뀌면 역동의 부산이 아주 큰 동작으로 용트림칠 게다.

편집국 부국장 겸 뉴미디어본부장 choonjin @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