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강원도 용평 ‘대관령 음악제’를 다녀왔다. 클래식 전문가는 아니지만, 그 나름대로 한동안 라디오에서 클래식 프로그램의 대본을 썼던 작가생활로 학습에 의한 아는 만큼 들리는 즐거움을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음악제의 취지가 국내에서 듣기 어려운 고품격 클래식 음악을 선보인다는 데 있었다. 대중적이지 않은 곡을 연주하다 보니, 낯이 선 음들이 역시나 귀를 자유롭게 넘지 못하고 허들에 발이 걸리듯 덜컹거렸다.

특히 그날 밤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연주된다던 러시아의 음악가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15번은 파격 그 자체였다. 바이올린, 피아노와 함께 타악기인 팀파니, 마림보, 드럼 등으로 구성된 곡은 그야말로 불협화음의 연속이었다. 20여 분간의 연주 동안 각각의 악기는 부드러웠다가, 거칠어지고, 멈추는가 싶으면 느닷없이 천둥 치듯 울려 대며 여과되지 않은 본능을 일깨우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나는 이 불협화음의 난해함 속에 이상하게도 자꾸만 아마존의 밀림이 떠올랐다.

온갖 식물과 곤충, 동물이 뒤엉킨 지구의 허파라는 곳, 타잔이 덩굴식물의 줄기를 타고 ‘아아아~’를 외치며 날아다녔던 그곳을 나는 왜 내내 떠올렸을까? 나중에 생각해보니 수많은 생명체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치열한 본능으로 살아가는 아마존의 모습이 쇼스타코비치의 불협화음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던 듯싶다.

우리가 흔히 듣기 좋다고 말하는 화음은 정확하게 수학적 계산에 의해 만들어낸 음의 어울림을 말한다. 그런데 현대로 오면서 작곡가들은 기존의 이 수학적 계산을 따르지 않고, 악기 소리들을 각자 치열하게 만들어내면서 불협화음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왜 그랬을까를 생각해 보면 나의 경우는 정원에서 답을 떠올리게 된다. 정원은 자연 그 자체인 숲이나 산과는 전혀 다른 인간의 통제에 의해 관리되는 공간이다. 자연에서라면 온갖 생명체가 각자의 생존 방법에 따라 죽을 힘을 다해 악을 쓴다. 그 치열함 속에서 성장하고, 때로는 절대적 순간에 생명을 잃기도 하고, 또 때로는 살기 위해 다른 생명체를 취하기도 한다.

이 치열함과 헤아릴 수도 없는 다양성은 우리 눈에는 카오스, 무질서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원에서라면 얘기가 다르다. 허락도 없이 자리 잡은 잡초라고 분류된 식물은 끊임없이 잘리고 뽑힌다. 또 웃자라는 식물은 가위질로 각이 잡히고, 식물이 피워내는 꽃을 좀 더 오래 보자고 번식 기능을 없애기도 한다. 이 모든 통제는 정원이라는 곳을 안정되고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 내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그래서 정원을 다시 한 번 정의해본다면 인간의 현명한 통제와 관리에 의해 식물과 곤충, 동물의 생태계 질서가 인간이 사는 주거 공간에서 조화롭게 존재하는 공간이다. 결국 무질서와 혼동의 자연과는 근본적으로 그 성격이 다른 셈이다. 그런데 여기서 좀 더 생각해 볼 부분이 있다.

그렇다면 자연이 정말 무질서와 혼동으로만 뒤엉킨 곳일까? 아마존의 숲을 항공 촬영해보면 숲의 꼭대기가 비슷해서 마치 일부러 키를 맞춘 듯 보인다. 그리고 나뭇가지가 펼쳐진 형태도 서로 부딪치지 않고 각자의 영역을 적당하게 확보하며 하늘을 골고루 나눠 쓴다는 걸 알게 된다. 이것을 ‘꼭대기의 수줍음(Crown Shyness)’이라고 과학자들은 부른다.

그뿐만이 아니다. 키 큰 나무에 가려진 하부 식물들은 그늘로 인해 생존이 힘들다. 하지만 가장 높이 솟는 식물은 잎이 가늘면서 한들거리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그 밑에서 자라야 하는 식물에게는 생존을 위한 결정적 요소가 된다. 키가 큰 데 잎까지 크고, 촘촘하다면 그 밑에서는 어떤 식물로 살 수 없기 때문이다. 하부 식물들은 대신 잎의 크기를 좀 더 키운다. 부족한 일조량을 채우기 위해선 광합성을 할 수 있는 잎의 면적이 넓어야 하기 때문이다.

치열하게 생존을 위해 각자의 이득을 취하는 것 같은 자연의 무질서 속에도 서로가 의지가 되고, 도움을 주는 시스템이 숨어 있다. 결국 모두가 다르게 살지만 그래서 각자 내는 목소리도 다르고, 생김과 방식도 다르지만 그 안에 또 다른 더 큰 의미의 조화와 질서가 유지된다. 정원이라는 공간도 우리가 전지전능한 신의 역할을 하는 곳이 아니다. 정원 속에서 우리도 하나의 생명체로 우리의 역할을 할 뿐이다. 8월의 정원은 걷잡을 수 없게 번지는 식물과 병충해, 혹독한 날씨가 말 그대로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처럼 불협화음의 연속이다. 하지만 이 역시도 정원의 한 부분이다. 그리고 그 불협화음이 결국은 또 다른 차원으로 생태계의 화음을 만들어 나가고 있음을 잊지 말자. 그래서 조급함에 지치지 말고 여유롭게 바라보는 시간도 갖고 이제 막 모퉁이를 돌아오고 있는 가을을 기다려보자!

작가·가든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