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살고 있는 집은 지은 지 30년 가까이 된 아파트다. 아내가 새 집으로 이사하고 싶어 해 휴가 때 아파트 몇 곳을 돌아봤다. 그중 한 곳은 분양 당시 부산에서 1순위 통장 가진 사람은 모두 청약했다는 소문이 돌았던 금정구의 대단지 아파트다. 내달 입주를 앞두고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었다. 주변 부동산중개업소에 시세를 물어봤다. 분양가가 3억8000만 원이었던 35평형의 최근 시세는 6억 원이 훌쩍 넘었다. 업소마다 매물이 두어 개 나와 있었지만 저층이 6억1000만 원, 로열층은 6억5000만 원을 호가했다. 프리미엄이 최고 2억7000만 원이 붙은 것이다. 정부가 8·2부동산대책을 발표했지만 이곳은 영향이 없다는 게 중개업자의 전언이다. 인근의 지은 지 2~3년 된 아파트값도 꾸준히 오름세라고 한다.

많은 이가 이번 부동산대책을 평가하면서 노무현정부의 그것을 예로 든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8·2대책은 노무현 정부의 대책을 그대로 받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임기 내내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벌였다. 종합부동산세 도입,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세 등 대책을 잇달아 쏟아냈지만 투기는 잡히지 않았다. 임기 말에 DTI(총부채상환비율)로 돈줄 죄기에 나선 끝에 투기의 꼬리나마 잡을 수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실패한 셈이다.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아주 다르다. 당시는 세계적으로 넘쳐나던 돈이 갈 곳을 찾아 돌아다니다 부동산으로 흘러 들어갔다. 부동산 활황이 우리뿐만 아니라 글로벌 추세였다. 돈이 넘쳐나니 정부가 대책을 내놓아도 약발은 잠시뿐이었다. 투기 세력에게 진 것이 아니라 ‘유동성의 힘’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지금은 여건이 달라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지속된 유동성 파티가 끝나간다고 말한다. 미국은 올해 들어 두 차례 금리를 올린 데 이어 지속적인 인상을 예고했다. 유럽중앙은행(ECB)도 올가을 통화정책 변경을 시사했다. 한국은행도 금리 인상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게다가 이번 부동산대책에는 국세청까지 가세했다. 다주택 보유자와 30세 미만의 고가 주택 취득자를 대상으로 세무조사의 칼을 빼 들었다. 그 자체로 다주택자들을 압박하는 효과가 있다.

그렇더라도 이번 대책만으로 투기가 잡힐지 예단하기는 어렵다. 부동산시장에 ‘아파트 구입해서 3년 묵히면 인삼, 5년 묵히면 산삼이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다주택자들이 버틸 가능성이 크다. 양도세가 무서워 집을 판다? 양도세 중과세도 그렇다. 양도차익에 대해서 최고 60%까지 세금을 물리겠다는 건데 그래도 양도차익이 40%는 남는다. 아까 예로 든 아파트의 경우를 보자. 프리미엄을 2억5000만 원으로 잡아도 양도차익 40%면 1억 원이 남는다. 1억 원을 가만히 앉아서 번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시대 뭘 해서 1억 원을 벌겠는가. 또 프리미엄을 곧이곧대로 신고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다운계약은 당사자 둘이 입 다물면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식으로 안 팔고 버티면 답이 없다.

일각에서는 공급 부족이 원인이라며 공급대책을 내놓으라고 한다. 물론 공급은 해야 한다. 그러나 아파트를 많이 지으면 과연 집값이 안정될까. 지금도 주택공급률은 전국이 100%를 넘는다. 서울은 90%대 중반이다. 하지만 자가보유율은 50%대에 그친다. 돈 많은 이들이 여러 채를 갖고 있다는 얘기다. 공급을 늘리면 자칫 부자들에게 먹잇감만 던져주는 꼴이 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남는 방법은 보유세 강화다. 우리나라는 거래에 매기는 세금은 많고 보유세금은 상대적으로 적다. 보유세를 높여야 부동산이 잡힌다. 다주택자에게는 세금을 무겁게 매겨 다주택으로 얻는 소득보다 세금부담이 훨씬 크게 만들어 팔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드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도 아마 히든카드로 ‘보유세’를 고려하고 있을 것이다. 조세 저항이 걱정스럽긴 하다. 노무현 정부도 강력한 무기인 종합부동산세를 만들었지만 ‘세금폭탄’이라는 야당의 주장이 먹히면서 껍데기만 남았다.

정부는 부동산 투기를 확실히 잡기 위해서라도 지금부터 보유세 인상을 선언하고 대국민 설득에 나서야 한다. 우리 국민의 의식 수준은 상당히 높다. 올해 어느 여론조사에서 ‘복지 수준을 높이기 위해 세금을 더 낼 용의가 있느냐’는 질문에 ‘동의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48.6%,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한 비율은 29.8%로 나타났다. 정당한 증세는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부동산 투기를 잡기 위해 보유세를 올린다고 하면 찬성할 이가 훨씬 많을 것으로 본다.

수도권이나 김해에서는 벌써 규제를 피해 탈출한 자금이 몰리는 ‘풍선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김해의 아파트 모델하우스가 외지인들로 붐빈다고 한다. 충분히 예상된 일이다. 정부의 대응을 지켜볼 일이다. 시장 이기는 정부 없다지만 이번만큼은 정부가 꼭 이기는 모습을 보고 싶다.

편집국 부국장 doll@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