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의 가상화폐가 열풍을 불러 오고 있다. 이들 가상화폐가 인터넷상에서 거래되고 실제 화폐와의 교환소도 생겨나고 있다. 단위당 가격이 수백만 원으로 폭등했다가 갑자기 하락하는 등 급등락이 반복되고 있다. 누구나 인터넷으로 연결된 컴퓨터에서 채굴 프로그램을 내려받아 암호를 풀면 가상화폐를 무상으로 얻을 수 있다. 암호를 푸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보통 컴퓨터로는 전기료가 더 많이 들어 채산성이 없다. 가상화폐 채굴 전용 컴퓨터나 컴퓨터 보드도 판매되고 있다.

최근 그래픽카드 품귀 현상이 벌어졌다. 이미지 처리를 위한 계산 칩을 병렬로 장착해 고속 고화상도 게임이나 동영상 처리 등에 주로 이용되던 그래픽카드를 가상화폐 채굴에 사용하기 때문이다. 수천 대의 전용컴퓨터를 갖춘 가상화폐 채굴 공장이 전력 요금이 저렴한 수력발전소 근처나 컴퓨터 냉각에 유리한 아이슬란드 등에 들어서고 있다. 가상화폐 채굴용 암호를 빨리 풀 알고리듬 전문가를 추천해달라는 부탁이 잦다.

비트코인을 처음 만들었다고 알려진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사람은 누구인지, 실존하는지에 대해 알려진 바 없다. 이런 신비주의가 가상화폐에 대한 관심을 높인다.

가상화폐는 정부가 인정하지도 않았는데 왜 가치를 갖고 거래가 되는가? 정말 가치가 보장되는가? 먼저 화폐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수년 전 중국작가 쑹훙빙의 베스트셀러였던 ‘화폐전쟁’ 시리즈를 읽어보면 조금 도움이 될 수 있다. 화폐의 본질은 신용창출이라고 한다.

문제는 누가 이런 약속을 하는가이다. 대개 정부가 지정한 중앙은행이 화폐를 발행한다. 과거에는 해당되는 가치의 금을 중앙은행에 보관하고 그만큼의 화폐를 발행하였다. 중앙정부의 권력과 권위도 충분한 신용을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에 너무 희귀하여 인류 역사상 가치가 크게 변하지 않았던 금을 담보로 신용을 창출한 게 금 태환제도였다. 중국 공산당은 국민당과의 내전 중에 점령지역에 통용될 화폐를 발행하였다. 태환에 사용할 충분한 금이나 은을 확보하지 못했던 중국 공산당은 해당 가치의 곡물과 직물을 동굴 속에 봉인하고 화폐를 발행하는 원칙을 철저히 지킨 것이 민심을 얻어 내전 승리에도 기여했다. 그러나 경제가 확대되는 데 비해 금 생산이 제한되고 화폐 조절에 의한 경제운용이 어려워 오늘날 거의 모든 국가에서 금 태환을 포기했다.

가상화폐는 정부나 중앙은행의 통제나 간섭 없이 불특정 다수가 일정한 규칙에 의해 자발적으로 만들어낸 신용이다. 그 덕분에 최근 일부 국가에서 나타난 경제 불안과 화폐가치 폭락에 상관없이 가치를 존중받는 대체통화로 사용될 수도 있다. 거래보다는 투자 대상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가상화폐를 일반 화폐와 교환하는 시장이 불완전해 폭락 또는 폭등의 위험이 크다. 아무도 그 가치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다.

가상화폐의 신용은 누가 창출했는가? 중앙정부나 중앙은행이 약속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가치를 갖고 거래가 되는가? 가장 큰 이유는 희소성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가상화폐를 채굴하기 위해 풀어야 할 암호는 채굴 가능한 전체 화폐량에 한정시켜 두었고 채굴 속도도 급격히 늘 수 없도록 설계되어 있다. 채굴자가 많아지면 그만큼 채굴속도가 느려지게 되어 있다. 또 다른 이유는 가상화폐의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선진국은 금융실명제를 시행하고 있어 금융거래가 노출된다. 현금은 주고받기가 불편하고 거액일 경우 위험도 높다. 은밀하고 안전하게 신용과 가치를 전달하는 데 가상화폐가 적격이다. 더구나 중계 수수료가 없다.

정부를 믿지 못하거나 사회가 불안해지면 가상화폐가 대체화폐가 될지도 모른다. 환율 걱정이나 정부의 간섭이나 통제에서 자유롭다. 기존 화폐의 불완전함을 보완 또는 극복할 수도 있다.

화폐는 인류가 오랜 시행착오 끝에 개선, 발전시킨 현대 경제시스템의 핵심이다. 가상화폐는 기술혁신이 화폐의 본질에 도전했다. 각국 정부는 가상화폐를 공식 인정하지 않고 있음에도 가상화폐는 점차 퍼지고 있다. 아직 제도가 가상화폐의 혁신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경제시스템의 근간을 재설계해야 할지 모른다. 가상화폐의 미래가 궁금하다.

KAIST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