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책상 서랍엔 1011건의 변사보고서(변사사건 발생 보고서)가 있다. 2013년 1~10월 부산에서 뜻밖의 사고로 사망한 사람들의 기록이다. 입수한 지 4년이 다 됐지만, 아직 단 한 장도 함부로 처분하지 못했다. 당시 기자가 경찰의 변사보고서를 모은 이유는 인연이 단절된 ‘고독한 죽음’ 때문이다.
‘1월 16일 남부민동 55세 남성, 숨진 지 6개월 만에 백골로 발견’을 비롯해 ▷2월 12일 남부민동 52세 남성, 숨진 지 2년 만에 백골로 발견 ▷5월 29일 연산동 57세 남성, 숨진 지 3개월 만에 백골로 발견 ▷10월 4일 낙민동 55세 남성, 숨진 지 5개월 만에 백골로 발견….
2013년 언론에 ‘고독사’로 보도된 죽음이 유독 부산에 많았다. 망인들은 왜 혼자가 됐고, 고독하게 살았으며, 외롭게 숨졌을까. 근원적 의문을 해결할 만한 자료가 전혀 없었다. 그래서 직접 통계를 만들고, 고독한 죽음의 원인을 살펴보기로 했다.
경찰에 접수된 1011건의 변사보고서를 수집했다. 전문가들과 함께 ‘사망 전 인연의 단절’과 ‘사망 후 방치된 주검’이라는 2개의 키워드로 1011건의 죽음을 분석했다. 또 변사 발생 장소를 일일이 찾아 망인의 주변을 탐문 취재했다. 사회연결망분석(SNA)으로 ‘심리적 부검’도 시행했다. 그 결과 1011건 중 108건을 명백한 고독사로 분류했다. 10개월간 매달 11명 가까이 부산에서 고독하게 죽음을 맞았다는 결론이다. 기사는 2013년 11월 20일 자를 시작으로 5차례 보도됐다. 첫 기사는 ‘고독사, 노인보다 40·50대가 더 많다’였다. 홀몸노인 문제로만 여겼던 고독사가 40·50대에서 가장 많다는 점, 여성보다 남성이 취약하다는 점, 경제력 없는 중년 남성이 최고 위험군이라는 점, 상대적 빈곤 지역에서 발생 빈도가 매우 높다는 점, 복합적이긴 하지만 청·장년(이혼) 노년(지병) 남성(이혼) 여성(우울증)별 유발 요인이 다르다는 점, 공동체 회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 개념 정의와 통계 작성이 필요하다는 점 등을 기사로 밝혔다. 또 인연을 되찾고 공동체를 부활하기 위한 대안으로 마을관리사무소를 제시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동구 범일동 매축지의 마을관리사무소 ‘마실’이다.
4년 전 얘기를 장황하게 꺼낸 건 세월이 4년이나 흘렀지만, 부산의 현실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즘 다시 고독사로 부산이 시끄럽다. 그러자 부산시는 고독사 예방 대책을 잇달아 내놨다.
그런데 부산의 고독사는 갑자기 전염병처럼 번진 게 아니다. 고독한 죽음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멈추지 않았다. 우리가 모른 척 외면했을 뿐이다. 그때는 입 다물고 있다가, 이제야 하루아침에 고독사가 심각한 문제인 것처럼 야단스러워할 일이 아니다.
더욱 답답한 건 “40·50대와 남성이 더 위험하다” “40·50대 고위험군의 안전망이 시급하다” “개념 정의와 기초 통계 작성을 서둘러야 한다” 등 4년 전 내려진 진단을 새로운 사실인 양 반복하는 행태다. 시가 대책으로 내놓은 ‘어르신 말벗 로봇’은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 또 다른 대책인 ‘1인 가구 전수조사’도 접근 방법이 틀렸다. 언제쯤 얼마나 내실 있게 끝낼지 그 가능성은 차치하더라도, “지금까지는 응답이 없으면 되돌아 왔지만, 앞으로는 강제로 문을 열겠다”는 인식은 참으로 안타깝다. 원인을 찾아 고독사를 예방하는 게 아니라 그저 주검을 빨리 발견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평생을 고독하게 살았지만 그나마 사망한 후 빨리 발견된다면, 이는 고독사가 아닌가.
하루를 더 살아도 유쾌하게 어울려 살도록, 혼자 외롭게 내버려 두지 않는 게 고독사 예방의 핵심이다. 끊긴 인연을 이어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꼭 필요한 건 공동체 회복이다. 그러나 정작 매축지 마을에서 건강·복지·문화센터 역할을 하며 공동체 회복을 이끌었던 ‘마실’은 최근 행정의 무관심과 지원 중단 속에 폐쇄됐다. 그래 놓고 뒤에서 고독사 대책을 논하는 건 한참 잘못됐다.
2013년 보도한 고독사 기획 시리즈의 제목은 ‘인연이 끊긴 사회’였다. 지금은 그때보다 더해, 사회가 나서서 인연을 끊고 있다. ‘인연을 끊는 사회’, 기자의 책상 서랍 속 변사보고서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처분하기 어려울 것 같다.
기획탐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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