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는 우리나라 경제정책의 사령탑으로 중앙 부처 가운데서도 ‘부처 위의 부처’로 통한다. 그런데 요즘 들어 ‘기재부의 명성이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구나’하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됐다.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굵직한 정책들을 ‘요리’하는 솜씨를 보면서다.

지난 2일 기재부가 발표한 2017년도 세제개편안. 세제개편안은 경제정책 방향, 예산안 편성 등과 함께 부처의 ‘3대 농사’ 가운데 하나로 이번에는 특히 새 정부 출범 이후 첫 세제 개편이어서 더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이른바 부자 증세와 서민 세금 부담 축소를 통한 소득재분배에 중점을 둔 이날의 세제개편안에서는 정부가 제시한 몇 가지 통계가 단연 눈길을 끌었다. 부자 증세의 논리적 근거로 내놓은 지니계수 개선율이라는 지표다. 이 숫자는 세금을 걷기 전과 걷은 후를 비교해 빈곤율이 얼마나 개선됐는지를 따지는 것인데, 숫자가 클수록 불평등 개선 효과가 높다. 2014년 한국은 13.5%로 독일(42.2%) 영국(31.3%)은 물론 미국(22.4%)보다 낮다. 통상은 지니계수를 소득 불평등 지표로 쓰는데, 이 지표는 우리나라가 양호하다 보니 보조 지표를 내세운 것이다. 이마저도 지니계수 개선율이 낮은 것은 부자에게 세금을 덜 걷어서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또 이날 OECD 국가 중 G20에 속한 11개국의 평균 최고 법인세율이 24.7%라는 통계도 내놨다. 법인세율 인상(22→25%)의 근거다. 그러면서 OECD 35개국 평균이 22.7%라는 사실은 못 본 척했다. 정해진 정책을 ‘숫자’로 뒷받침하는 기재부 관료들의 집요함과 노력이 돋보이는 장면이었다.

기재부는 지난달 25일에는 나랏돈 씀씀이를 늘리고 분배를 강화해 양극화와 저성장을 극복한다는 소득주도 성장을 근간으로 하는 새 정부 첫해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는 앞으로 5년 동안 일자리 교육 등에 사용하는 예산 지출 증가율을 경상성장률(실질 경제성장률+물가상승률)보다 높게 가져가겠다고 밝혔다. 나라 경제가 커지는 속도보다 나랏돈 지출을 더 많이 하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정부는 지출 규모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면서도 얼마나 돈을 더 쓸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지난 정부에서 ‘금과옥조’처럼 되뇌던 재정 건전성 등에 대한 설명도 이번에는 가급적 피해갔다.

곤란한 얘기에는 입을 닫고 ‘침묵’하는 것으로 비켜 갔다. 공기업인 중부발전 사장을 지내다 이번 정부 고위급 인사에서 친정으로 금의환향한 기재부 김용진 2차관은 지난 정부에서 공기업 성과연봉제를 누구보다 열심히 실천한 인물이다. 중부발전은 모범적인 성과연봉제 시행으로 정부로부터 다양한 인센티브도 받았다. 그런데 새 정부는 공기업 노동조합의 의견을 받아들여 성과연봉제를 사실상 적폐로 규정하고 폐기 처분했다. 하지만 김 차관은 이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한 번도 제대로 밝힌 적이 없다.

정권이 바뀌면 주요 정책들이 새롭게 만들어지고 일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기도 한다. 또 관료는 새로운 정책을 뒷받침하고 일선에서 충실히 집행하는 것이 주된 임무이기도 하다. 그렇더라도 새로운 정책을 두고 내부적으로 반론이 나왔다거나 치열한 토론이 벌어졌다거나 하는 등의 얘기는 들어보기 어렵다. 중앙 관가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대부분의 부처 공무원이 비슷하다”며 씁쓸해했다.

서울경제부 부장 cjh@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