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를 포함한 한자 문화권에선 예로부터 닭을 상서로운 동물로 여겼다. 조선 후기의 학자 홍석모가 편찬한 ‘동국세시기’를 보면, 항간에서 벽에 닭과 호랑이 그림을 붙여 놓고 액이 물러나기를 빈다는 기록이 나온다. 책은 대보름날 닭이 열번 이상 울면 풍년이 든다는 속설도 전한다. 선인들은 닭이 울음소리로 새벽을 알리는 까닭에 귀신을 쫓는 가능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옛날 중국에서는 정월 초하루를 ‘닭의 날(酉日·유일)’로 정하기도 했다.

한시학의 개창자인 중국 한나라 학자 한영은 저서 ‘한시외전’에서 닭의 미덕을 다섯 가지로 정리했다. 관을 쓴 듯한 머리 위 볏의 문(文), 갈퀴 같은 발의 무(武), 적에 맞서 죽을 때까지 싸우는 용(勇), 먹을 것을 보면 상대를 부르는 인(仁), 잊지 않고 때를 알리는신(信)이 그것이다. 다른 동물은 사람이 길들여야 지시를 따르지만, 닭은 시키지 않아도 때가 되면 우는 유일한 동물이라 해서 중국인들은 닭 그림을 좋아한다.

닭이 상서로운 동물인 것은 풍수지리에서도 나타난다. ‘금닭이 알을 품은 형국’을 뜻하는 ‘금계포란(金鷄抱卵)’의 명당이 그렇다. ‘닭실마을’로 유명한 경북 봉화군 봉화읍 유곡(酉谷)리가 그 한 곳이다. 조선 중기의 문인 권벌의 후손들이 사는 이 마을을 실학자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경주 양동마을, 안동 내앞마을, 풍산 하회마을과 함께 ‘삼남의 4대 길지’로 꼽았다. ‘먹이를 노려보는 닭’을 의미하는 ‘대계탐시(大鷄眈視)’의 명당도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남 거제시 장목면 외포리 대계마을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런 닭이 정유년(丁酉年) 닭띠 해를 맞아 혹독한 수난의 수렁에 빠졌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경남 경북 제주도 경기도 등지서 조류인플루엔자가 창궐해 대거 살처분 당하더니, 최근 계란에서 살충제 성분까지 검출돼 관련 농가들의 생산물이 전량 폐기되고 있다. 정부 당국은 살충제 계란을 낳은 닭들의 살처분 여부도 검토 중이다. 우리보다 먼저 같은 사태를 겪은 네덜란드에선 산란계 100만여 마리가 살처분됐다. ‘닭의 지옥도’가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근본 원인은 바닥면적이 A4용지보다 작은 공간에서 ‘밀집 사육’하는 인간에 있다. 인류 문명의 야만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현장이다. “꼬끼오!” 닭의 울음소리가 ‘인간 때문에 못 살겠다’는 피 맺힌절규로 들린다.

이경식 논설위원 yis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