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프로바둑대회가 최초로 열린 건 1988년이었다. 일본의 후지쓰배(盃)가 그것이다. 대만의 부호 잉창치가 만든 잉창치배도 같은 해 출범했다. 조훈현 9단은 이 대회에서 당대 고수들을 연파하고 첫 우승의 영예를 안았다. 잉창치배 이후로 세계 바둑대회가 잇따라 생겨났다.

그에 앞서 ‘컴퓨터 세계바둑대회’가 먼저 시작됐다. 잉창치는 1985년 이 대회를 창설하면서 2000년까지 프로기사를 이기는 컴퓨터 바둑 개발자에게 150만 달러의 상금을 걸었다. 하지만 수상자는 나오지 않았다.

바둑은 ‘서양이 범접할 수 없는 동양의 전유물’로 인식돼 왔다. 그런데 컴퓨터 바둑 프로그램을 처음 개발한 건 1969년 미국의 과학자 앨버트 린지 박사였다. 프로그램 연구도 서구 학자들이 주도해 나갔다. 그러다 2006년 프랑스의 레미 쿨롱이 ‘MOGO’을 내놓으며 비약적 발전을 이뤘다. MOGO는 2008년 한국 김명완 9단과의 시합(9점 접바둑)에서 1승 1패로 한 판을 따냈다. 컴퓨터가 프로기사에게 거둔 최초의 승리다.

그런 뒤 여러 컴퓨터 프로그램이 등장해 인간과의 격차를 서서히 좁혔다. 2015년에는 ‘알파고’가 나타났다. 알파고는 지난해 인류 대표 격인 이세돌, 올해에는 중국의 최고수 커제를 차례로 넘어뜨리며 바둑계를 발칵 뒤집어놨다. 5000년 역사의 인간 바둑이 알파고에 정복당하는 순간이었다.

엊그제 중국에서 ‘제1회 중신증권배 인공지능 바둑오픈전’ 결승전이 펼쳐졌다. 우승상금 20만 위안(약 3400만 원)의 이 대회는 알파고가 빠졌지만 AI끼리 세계 1인자를 가리는 시대가 왔음을 보여준다. 7개국 12개팀의 바둑 AI가 출전했는데 한국의 ‘돌바람’은 8강에서 탈락했고, 일본의 ‘딥젠고’가 초대 챔피언이 됐다. 딥젠고는 일본의 최강 이야마 9단을 이미 꺾은 바 있고, 중국의 AI ‘줴이’는 이번에 딥젠고에 졌지만 알파고에 버금간다.

프로기사에게는 이런 소식이 달가울 리 없다.중국에서는 벌써부터 인간 바둑대회의 스폰서가 줄어들지 않겠냐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조치훈 9단의 말을 새겨들어 보자. “AI 바둑은 평정심을 갖고 사심이 없습니다. 그걸 배워야 합니다. AI의 도움을 받아 기력(棋力)을 기르면 언젠가 (알파고 또한) 이길 수 있을 겁니다. 바둑에는 한계가 없으니까요.”

구시영 논설위원 ksyo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