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7위 국적선사 한진해운이 사라지며 위기에 빠진 해운업을 살리기 위한 전담지원기관인 한국해양진흥공사가 우여곡절 끝에 내년 6월 부산에서 출범한다. 그간 공사냐 주식회사냐, 선박금융에 국한하느냐 등을 놓고 이견을 보이던 해양수산부와 금융위원회는 막판까지 서로 휘하에 두기 위해 벌인 신경전이 밥그릇 싸움으로 비쳐 비난을 사기도 했다. 결국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해양수산부 산하에 두되 금융위가 법적 권한을 갖고 금융 건전성을 상시 감독하는 걸로 교통정리가 돼 표면적으로 일단락됐다. 김영춘 해수부 장관은 해양진흥공사 설립이 국가 기간산업인 해운산업을 적극 육성하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라며 의미 부여를 아끼지 않았다.
해양진흥공사는 원래 문재인 대통령의 후보시절 공약인 ‘선박금융공사’에서 비롯됐다. 그는 올해 1월 부산항만공사를 찾아 찾아 해운산업을 살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며 선박금융공사 설립을 제시했다. 당선 후인 ‘바다의 날’ 행사 때도 “대통령이 직접 챙긴다”는 표현을 써 가며 설립을 기정사실로 했다. 이후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상 금지보조금 시비에 휩쓸릴 수 있다는 현실적 제약 때문에 결국 명칭을 바꿔 해양진흥공사로 태어났다.
해양진흥공사를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주 업무인 선박금융 이외에도 연구기관과 정부 등이 해야 할 업무까지 망라하고 있어 실체가 명확하지 않다고 우려한다.
시황정보 제공과 관련해선 현재 해운거래소 설립을 골자로 하는 해운법 개정안이 지난 3월 국회를 통과했다. 이는 상하이해운거래소에 버금갈 정도로 역량을 키운다는 큰 그림 속에서 김 장관이 대표발의한 것이 아닌가. 시황업무를 독립된 해운거래소가 아닌 해양진흥공사의 일부로 더부살이시키는 것은 근시안적 행정이라는 생각이 앞선다. 노후선박 대체나 국가필수해운제도 등의 업무는 해수부에서 할 수 있지 않은가. 해운업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넓은 오지랖보다 선택과 집중으로 본연의 업무에 매진하는 것이 맞다.
자본금 출처 문제도 깔끔하지 않다. 이번에 통합되는 한국선박해양의 자본금 1조 원은 이미 현대상선의 배 10척을 구입하느라 8000억 원을 써버렸다. 자본금이 5500억 원인 해양보증보험도 이미 보증한도를 거의 소진했다. 설립 납입자본금 3조1000억 원은 이들 두 회사의 자본금과 정부 항만공사 지분, 해수부 예산 등 정부 추가 출자금으로 충당한다고 하지만 더는 세세한 내용이 없다. 돈줄을 쥐고 있는 금융위와 충분한 협의가 됐는지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이다.
선박금융 업무가 중첩되는 것도 짚어봐야 한다. 국적선사 위주로만 지원을 할 경우 업무가 겹치는 산업은행·수출입은행·자산관리공사 등이 앞으로 국적선사에 문을 열어 줄지, 아니면 옛날로 돌아가 머스크 등 외국선사 지원으로 실속을 차릴지에 대한 안전장치가 없다는 것도 문제다.
한 전문가는 실체와 역할이 모호한 해양진흥공사 대신 차라리 기존 한국선박해양과 해양보증보험의 자본금을 확충해 선대가 많은 선사는 한국선박해양을, 신용도가 낮은 선사는 해양보증보험을 이용하도록 하는 등 선박금융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것이 수요자 입장에선 더 낫다고 한다. 그는 공급자를 줄여 하나로 묶으면 결국 수요자가 한꺼번에 몰려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을 수 없는 데다 자칫 ‘공유지의 비극’으로 자본금이 초기에 소진될 수 있음을 경계했다. 대출에다 담보 기능까지 맡아 문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시간은 아직 있다. 해수부는 올해 안에 공사 설립을 위한 근거법인 한국해양진흥공사법의 제정을 마치고 내년 6월 출범한다. 정부가 진정 해운산업을 재건하려면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해운사를 비롯한 선주협회, 조선소, 화주들로부터 대승적으로 출자를 받아 지금보다 훨씬 큰 펀드를 조성, 선박을 발주하고 나아가 세계 흐름에 맞게 M&A(인수합병)로 대표 국적선사의 몸집 불리기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획기적 결단이 없으면 한국 해운산업은 변방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실체가 모호한 공사 설립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전력투구해도 미래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해양수산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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