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몇 모임에서 스포츠의 참뜻을 되물었다. 지난번 스포츠 에세이 칼럼(지난 7월 14일 자)을 잘 읽었다며. 참 예쁘고 고마운 분들이다. 그 칼럼에서 나는 스포츠의 참뜻을 S, P, O, R, T, S로 나눠 재해석해봤다. 그들은 6가지 중에서 긍정성(Positiveness)에 관심이 제일 컸다. 요즘 ‘긍정’이 절실한 화두이기 때문이리라.

운동이 긍정성을 키워준다는 게 내 주장만은 아니다. 동서고금 위인들의 가르침이기도 했다. 이를테면 철학자 루소는 말했다. “아이들을 자연에서 맘껏 뛰놀게 하라. 그러면 올바른 마음으로 자란다.” 신라 화랑교육도 좋은 예다. 화랑의 기본사상은 ‘밝’이다. ‘광명’을 뜻한다. 이는 곧 긍정 마인드이기도 하다. 화랑의 주요 교육은 운동이었다. 여러 무예 수련은 물론, 등산과 춤도 배웠다. 그러면서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며, 동료를 사랑하는 긍정적 인간이 됐다.

언젠가 E방송국에서 매우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동년배 일반인들을 두 그룹으로 나눴다. A 그룹엔 ‘해 질 녘, 황혼, 은퇴, 쓸쓸함, 안락의자’ 등의 힘겨운 노년이 연상되는 단어들로, B 그룹엔 ‘스포츠, 열정, 활기, 청춘, 스피드’ 등의 힘찬 젊음이 느껴지는 단어들로 작문을 부탁했다. 물론 실험 목적은 훌륭한 문장을 구성하는 게 아니었다. 글자나 말이 인간행동에 어떤 변화를 주는지 알아보려는 것이었다. 그룹별로 한 사람씩 실험실로 들어가 열심히 문장을 만들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작문 후 B 그룹은 하나같이 가슴을 활짝 편 채 경쾌하게 실험실을 나왔다. 하지만 A 그룹은 모두 실험 전보다 어깨가 축 처진 채 느릿느릿 걸어 나왔다.

이 실험을 관찰했던 예일대 존 바그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사람이 어떤 단어를 보면 뇌에서는 관련 행동을 취하게 한다. 예를 들어 ‘움직인다’란 단어를 읽으면 뇌는 우리 몸에 움직일 준비를 명령한다.” 세계적 베스트셀러 ‘긍정의 힘’을 쓴 조엘 오스틴도 비슷한 말을 했다. “인간의 기억장치에는 두 가지 파일이 들어 있다. 하나는 성공, 기쁨, 행복에 관한 긍정적인 것이다. 다른 하나는 실패, 슬픔, 불행에 관한 부정적인 것이다. 인간은 본 것을 생각하고, 생각한 것을 저장하며 서로 다른 성향을 만든다. 긍정적인 인간이 되려는가. 긍정적인 것만 보고 듣고 느끼고, 활동하라.”

이런 관점에서 운동은 긍정성을 기르는 데 매우 좋다. 우선, 운동과 관련된 단어들은 활력과 긍정을 느끼게 한다. 이를테면 ‘달리기, 뛰기, 던지기, 받기, 땀, 박수, 응원, 으라차차’ 등의 단어를 읽어보자. 몇 단어만으로도 힘이 불끈 생긴다. 읽는 데 그치지 말고 행동으로 옮겨보자. 그 효과는 훨씬 더 커진다. 고개 숙여 힘없이 타박타박 걷는 것보다 이왕이면 가슴을 활짝 편 채 저벅저벅 걸어보자. 또 묵묵히 운동하지 말고 서로 짝짝짝 손뼉 치며 “좋았어, 힘내”라며 응원 함성을 질러보자. 그렇게 15분을 운동해보자. 엔도르핀이나 세로토닌 등의 행복 호르몬이 팍팍 분비되기 시작한다. 기분 좋고 여유로운 긍정 마인드도 쑥쑥 생겨난다.

“운동이 과연 긍정을 만드는 걸까요? 오히려 공격성을 더 부추기는 게 아닐까요?” 그날 모임에서 철학과 김 교수가 반론을 폈다. 고대 로마의 그 잔인했던 콜로세움 경기부터 오늘날 비윤리적 스포츠게임 사례까지 들춰내면서. 뭐, 틀린 말은 아니다. 어떻게든 이기려고만 드는 운동은 그의 말대로 공격성 학습시간인 셈이다. 내가 늘 강조해 왔듯이 긍정성은 스포츠의 본질에 충실할 때 무럭무럭 자라난다. 너도나도 기분을 좋게 만드는 행복 활동으로서 운동할 때 말이다.

부산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