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수배. 4인조 침묵의 살인자’.

의료계와 보건 당국에 이런 현상수배 전단이 내걸린 지 오래다. 4인조 침묵의 살인자는 고혈압, 당뇨, 비만, 고지혈증(고콜레스테롤증). 이른바 대사증후군이다. 섭취한 영양이 몸속에서 순환되는 대사(代謝) 과정에서 생기는 질환이다. 고혈압, 고지혈증, 비만, 심혈관계 죽상동맥 경화증 같은 여러 가지 질환이 한꺼번에 나타난다. 의학적으로 ▷두꺼운 허리둘레(복부비만·남성 90㎝ 이상, 여성 85㎝ 이상) ▷고혈압(수축기 130㎜Hg, 이완기 85㎜Hg 이상) ▷고중성지방(트리글리세라이드·150㎎/㎗ 이상) ▷낮은 고밀도콜레스테롤(HDL·남성 40㎎/㎗ 미만, 여성 50㎎/㎗ 미만) ▷공복혈당 상승(100㎎/㎗ 이상) 등 5개 위험요인 중 3개 이상이면 대사증후군에 해당한다.

이들 침묵의 살인자가 무서운 것은 당신을 찾아가도 별다른 불편을 느끼지 못한 채 혈관을 망가뜨리고 뇌경색, 심근경색처럼 사망으로 이어지는 합병증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증상을 알지 못하고 그냥 사는 사람이 적지 않다. 뚱뚱하거나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이 있다고 해서 곧 죽지 않으니까. 설령 대사증후군을 인지하더라도 바쁘고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운동할 시간을 내기 쉽지 않다. 게다가 술과 담배는 스트레스 해소에 그만이어서 줄이기 힘들다.

국민 4명 중 3명이나 대사증후군 위험요인을 안고 있다. 4인조 살인자에게 노출돼 변을 당할 수 있다는 뜻이다. 건강보험공단의 ‘2015 건강검진 통계연보’를 보면 2015년 일반건강검진을 받은 1321만3329명 가운데 72.2%에 해당하는 1000만 명이 대사증후군 위험요인 1개 이상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수검 인원 24.0%(337만 명)는 위험요인 3개 이상을 보유한 대사증후군이었다. 위험요인별로는 고혈압 비율 42.8%로 가장 많았고, 공복혈당 상승 35.9%, 고중성지방 30.3%, 복부비만 22.4%, 낮은 고밀도콜레스테롤 22.1% 순이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사증후군은 한국인 사망의 막강한 배후세력으로 자리 잡았다. 2013년 사망 원인 중 심뇌혈관 질환(25.0%)은 암(28.3%)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심뇌혈관 질환의 사회경제적 비용은 2013년 고혈압 2조3343억 원을 포함해 13조6000억 원으로 조사됐다고 질병관리본부는 분석했다.

이들 침묵의 살인자는 의사와 약을 겁내지 않는다. 대사증후군 환자가 약을 먹으면 이들 침묵의 살인자는 잠복해 있다가 약을 끊으면 다시 출몰한다. 이들을 잡을 수 있는 무기는 규칙적인 운동과 적절한 영양 섭취, 스트레스 해소 같은 생활습관 개선이다. 운동은 내 몸의 주치의인 셈이다.

국제신문은 창간 70주년을 맞아 ‘부·강(부산을 건강하게) 프로젝트’로 ‘스포츠가 복지다’라는 기획시리즈를 연재하고 있다. 평소 스포츠를 통해 건강을 유지하면 노후에 의료·복지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취지에서다. 100세 장수가 보편화되는 ‘호모 헌드레드(Homo-Hundred) 시대’에 걸맞게 스포츠 패러다임을 바꾸자는 얘기다. 아파서 골골하며 불행한 노년을 보낸다면 100세 장수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본지가 제기한 화두에 많은 시민이 공감한다. 부산시도 내년을 ‘건강한 부산’ 원년으로 정하고 ‘끊고(술, 담배) 줄이고(소금, 설탕) 운동하자’는 내용의 건강 행태 개선 운동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부산은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이 지난해 12월 말 기준 15.3%( 53만6064명)로 7대 광역·특별시 가운데 가장 높아서 시 건강 및 복지정책 틀을 새로 짜야 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운동은 건강하고 행복한 노년의 밑거름이 될 뿐 아니라 현재 대사증후군이라는 침묵의 살인자에게 급습당할 우려도 막아준다. 당장 오늘부터 운동을 시작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운동습관을 길러 근력을 유지하지 않으면 나이가 들어 운동하려고 해도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출퇴근길 자가용 승용차 대신에 버스, 도시철도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걷고, 엘리베이터 대신에 계단을 오르는 것이 그 출발이다. 일상의 작은 운동이 4인조 침묵의 살인자를 큰돈 들이지 않고 손쉽게 일망타진할 수 있는 길이다. 그 피해자가 될지, 검거자가 될지는 당신의 선택에 달렸다.

의료과학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