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 새로 개설한 수필 창작 수업을 맡았다. 첫 수업에서 나이 지긋한 여성이 찾아와 수업을 들어도 되는지 물었다. 나중에 그녀의 나이가 예순아홉임을 알았으나, 그날 내 눈에는 배움의 열망으로 반짝이는 눈빛만 보였다. 검정고시를 거쳐 만학의 꿈을 안고 입학한 그녀는 지각 결석 한 번 없었고, 과제가 혹독하기로 유명한 내 수업에서 모든 과제를 제때 제출했다.

누구나 글쓰기는 어렵다. 더군다나 각자의 글을 두고 합평을 통해 날 선 상호 평가와 교수의 지적이 이어지는 수업은 힘들 수밖에 없다. 그녀는 수업을 즐겼다. 매주 내가 어떤 과제를 던져줄까 설레며 기다린다고 했다. 글을 두고 쓴소리를 해도, 그것이 모두 관심과 애정 같아 기쁘다고 했다. 늦은 밤 홀로 깨어 글 쓰는 시간이 세상 무엇보다 행복하다는 예순아홉 살의 여학생이 있어 지난 학기 나는 행복했다. 그녀가 제출한 과제 중에서 생이 얼마 남지 않은 친구와 반딧불이 찾기 여행을 떠난 글이 생각난다. 여행 후, 결국 친구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부산역에서 한달음에 대전까지 가서 친구의 임종을 지켜보는 대목, 떠나가는 친구에게 “좋은 자리 잡아놓고 날 기다려 줘”라고 속삭이는 구절에서 나는 울어버렸다. 그녀도 글을 쓰며 내내 울었을 것이다. 문장은 거칠고,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엉성하다. 간혹 단락 구분의 기준이 모호해 글의 흐름이 부자연스럽다. 그런데도 끝내 마음에 닿아 나에게 감동을 준다. 그녀의 글을 지도하며 나는 좋은 글은 어떤 글인지 고민에 빠졌다.

1970년대부터 예일대학에서 글쓰기를 강의한 윌리엄 진서는 좋은 글쓰기의 핵심이 인간미와 온기라고 말한다. 이는 ‘글이 곧 그 사람’이라는 말과 통하며, 좋은 사람이 좋은 글을 쓴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러한 인간미를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에토스(Ethos)라고 했다. 좋은 글은 독자를 설득한다. 독자는 단지 머리로 이해한다고 설득되지 않는다. 모든 글의 최종 목적은 감동이며, 감동은 온전히 설득된 자에게 밀려오는 정념이다. 진정한 감동은 내 몸과 영혼이 바뀌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이다.

설득이란 단지 이성적인 논리(로고스)뿐만 아니라, 감정과 욕망(파토스), 인격과 윤리성(에토스)까지 포괄하는 소통의 기술이다. 2000년 가까이 화술과 웅변을 중심으로 내려오던 수사학의 전통이 글쓰기에 본격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반이다. 당시 하버드대학에서 작문을 수사학의 정식 과목으로 편입하면서 오늘날 통용되는 문장이나 단락 구조, 문체적 특성 등 다양한 개념을 체계화하였다. 논리적인 글뿐 아니라, 수필의 공감, 소설의 감동도 모두 설득에서 나온다. 설득되지 않고 공감하고 감동하는 독자는 없다.

시카고대학의 글쓰기 과정을 정립하고 미국 글쓰기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조셉 윌리엄스도 글쓴이의 에토스를 강조한다. 연암 박지원의 산문 ‘큰누님을 보내며’는 연암이 큰누님을 잃고 쓴 제문이다. 솔직하고 담백하며, 무엇보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면서도 누이를 향한 절절한 마음이 누이의 시신을 떠나보내는 정경과 어울려 정돈되어 있다.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이 글의 미덕도 연암의 에토스에서 나온다. 300자가 채 되지 않을 짧은 글에 이덕무는 감동하여 극찬한다. 물결치는 감정과 냉철한 이성 사이에서 감정의 파고를 다스리고, 이성의 냉기에 온기를 불어넣는 것이 에토스다. 파토스는 자연 발생적이고, 로고스는 훈련을 통해 배울 수 있으나, 에토스는 글쓴이의 생애 그 자체다.

좋은 글은 담백해야 하며 문장이 담백하려면 형용사나 부사, 접속사를 줄여야 한다. 솔직하게, 쉽게 쓰고, 리듬감 있는 문장에 자기만의 사유와 성찰을 담는다.

글쓰기가 어려운 것은 세상에서 가장 요행과 우연이 없는 행위가 글쓰기이기 때문이다. 이제 소셜 네트워크의 발달로 글 쓰는 일이 소수 전문가에게 주어지는 권력이 아니라 삶을 풍요롭게 살고픈 이들이 선택하는 권리가 되었다. 글쓰기는 삶을 이해하기 위한 수공업이며, 부단히 노력하면 누구나 글쓰기로 자기 삶의 장인이 될 수 있다.

예순아홉 살 여학생의 과제 중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글이 있다. 맏이로 자라, 결혼 후에도 친정엄마를 모시며 동생들 학비 대고 결혼시키는 동안, 정작 자신의 손에 가락지 하나 없었다는 푸념을 돌아가신 엄마의 사진 앞에서 풀어놓는 글이다. 그녀의 글에서 사진 속 엄마는 일흔을 앞둔 딸에게 속삭인다. “넌 나의 최고의 딸이야.”

좋은 글은 인간미와 온기를 지닌 에토스가 핵심이다. 마리온 존 맨은 무의식에는 의식의 빛이 필요하고, 의식에는 무의식의 에너지가 필요한데, 글쓰기로 이 두 가지의 교환이 가능하다고 했다. 카를 구스타프 융의 말처럼 의식되지 않은 무의식이 곧 운명이 된다면, 우리는 글쓰기로 운명을 바꿀 수 있다.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