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러시아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부산에서 출발한 열차가 유럽까지 직접 오는 날을 꿈꾼다는 뜻깊은 선언을 하며 ‘신북방정책’을 발표했다. 지난달 24일에는 노르웨이 함메르페스트를 출발한 러시아선적의 LNG운송선이 북극항로를 쇄빙선 도움 없이 자체의 쇄빙기능만으로 1.2ｍ 두께의 얼음을 깨며 항해해 19일 만에 우리나라에 도착했다. 최초의 사건이다. 이 항로가 아니면 유럽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우리나라로 올 때 이집트 수에즈 운하를 통과, 인도양을 거쳐 2만1000㎞를 운항해야 한다. 하지만 북극항로로 오면 1만2700㎞로 단축되어 약 30%의 운송거리 절감효과가 있다. 곧 북극항로는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핵심적인 중심항로가 될 전망이다.
지난해 12월 14일, 영국 케임브리지 지역의 아마존 드론배송센터에서 인근 소비자 집으로 TV셋톱박스와 팝콘 1봉지가 드론으로 배달되었다. 이때 걸린 배송시간은 13분정도였다. 드론이 4.7파운드(2.17㎏)의 무게를 이기며 아마존 고객의 주문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최초의 기록이다.
이렇게 그동안 산업과 기술의 혁신에서 미국이나 아시아에 한 발 물러서 있던 유럽이 속도의 혁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금 유럽의 런던이나 암스테르담, 프랑크푸르트, 파리, 취리히, 밀라노 등에서는 도시재생이 활발하다. 그 중에 유럽의 무역항 관문으로 네덜란드의 로테르담이 떠오른다. 인구 60만의 이 도시는 인근 독일의 루르공업지대를 비롯해 벨기에, 스위스, 프랑스의 공업도시들이 만드는 물건을 수출하고 필요한 물건을 수입하는 중계항이나 환적항으로 그 역할이 큰 도시이다. 북극항로가 활짝 열리면 더 역할이 커질 항구도시이다.
부산과 이 도시의 연결을 일컬어 유라시아 항로라고도 한다. 로테르담은 외관이나 도시 내부도 부산보다 많이 작다. 그러나 그 도시기능은 한마디로 글로벌하고 종합적이다. 특히 요즘 제조업을 지원하는 서비스융합 기반을 확충하는 노력이 뚜렷하다. 로테르담은 석유수입항으로 명성이 나 있어서 정제능력이 탁월하고 이 거래를 지원하는 상품거래소도 가지고 있다. 로테르담의 그 반대편에서 지금 막 떠오르는 카운터 파트너는 다름 아닌 부산이다. 세계의 많은 경제활동이 장차 이 두 도시를 거대한 축으로 하여 획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 부산은 주변의 울산, 창원, 김해, 양산 등 생산도시를 아우르고 융합하는 제조와 서비스의 융합기반 확충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과거만 해도 적기, 우암동, 감만동, 영도, 3·4·5부두 등 항구 가까이에 많은 생산시설이 있었고, 그 주변에 이를 지원하는 제조서비스기능이 근거리에 붙어 있었다. 서면만 하더라도 인근에 자동차, 타이어, 신발, 섬유, 화학, 식품 등의 제조시설이 많았다. 또 그를 지원하는 상업이나 서비스기반이 부전동이나 범천동, 범일동, 양정 등 인근에 포진해 있어서 그야말로 도보로도 지원이 가능한 융합된 도시구조였다. 선박건조나 운항을 지원하는 서비스도 충무동, 남포동, 중앙동에 즐비해 온 도시가 하나로 뭉쳐 돌아가는 제조와 무역과 상업의 도시였다.
제조업에서 속도를 이기는 거래는 아무 곳에도 없다. 우리가 그동안 중국의 성장을 가장 알차게 향유한 것도 바로 지정학적 속도의 메리트였다. 이제 유럽의 주요 도시들이 부산이나 동남권 생산거점과 더 빠르게 연결되어야 한다. 그에 대비한 부산과 주변 생산도시의 제조서비스 융합노력은 이제까지도 준비를 해오고 있지만, 더 의욕적으로 속도를 내야한다고 본다.
제조와 서비스의 융합은 제품을 메인으로 하는 전략과, 서비스를 메인으로 하는 전략, 그리고 제조와 서비스를 수평적으로 융합하는 전략으로 구분할 수 있다. 예컨대 조선 같은 이미 그 수준이 성숙한 산업은 서비스 주도의 제조융합이 바람직하다. 바이오 같은 산업은 제조주도의 서비스융합이 가능해 보이고, 전자산업은 제조와 서비스의 수평적 융합이 가능해 보인다. 부산이 동남권 전체의 지역발전을 아우르고 점차 단축되는 글로벌 지역과의 연결능력을 키우려한다면 문화서비스도 좋고 관광서비스도 좋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단연 제조서비스에 방점을 두어야 한다고 본다. 그 중심 역할을 우선 지식서비스 기반에 두고 지역 내 대학과 기업연구소나 산업연구센터의 기능 확충과 지원강화를 통해 청년실업 문제와 도시 창조역량 개발에 적극 힘을 쏟을 때라고 생각한다.
경기대 교수·경영전문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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