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우리는 지진 관측 사상 최대 강도인 규모 5.8의 경주지진을 겪으면서 우리나라가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님을 실감하였다. 당시 지진의 여파로 뒤틀린 경주지역 지각이 안정을 찾기 위해 여진들이 계속되는 가운데, 정부와 학계는 원인을 규명하고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더 큰 지진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고자 바쁜 1년을 보냈다.

지난해 경주지진은 양산단층대를 따라 발달한 북동 방향의 부수(附隨) 단층 중 하나가 비교적 깊은 지하 11~15㎞에서 약 3㎞ 폭으로 끊어지면서 발생했다. 이 단층운동은 태평양판이 서쪽으로 이동해 발생하는 동북동-서남서 방향의 압축력에 의해 우리나라 동남부 지각이 수축하는 과정에서 일어났으며, 땅이 수평으로 움직이는 우수향 주향이동단층운동으로 지진이 일어났다. 과학자들은 지난 1년 동안 경주지진의 원인이 되는 지하의 단층운동과 지각에 가해진 힘의 실체를 소상히 밝혀냈다.

정부는 올해 다부처 공동 지진단층조사 사업단을 출범시켰으며, 이 사업단은 향후 25년간 우리나라 전역을 대상으로 지진을 발생시킬 수 있는 활성단층을 조사하고 분포와 특성을 웹을 통해 국민에 공개할 예정이다. 지진 전담부서 신설과 전문가도 충원하고 있어 지진에 대해 관심조차 없었던 과거 정부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지방정부의 변화가 감지된다. 과거 부산시와 같은 대도시 지방정부에서조차도 지진 전문가를 단 한 명도 찾아보기 힘들었으나, 경주지진 이후 비록 소수이나 부산시 창원시 울산시 등에서 특채 형식으로 지진방재 전문가를 채용하고 있다.

부산시 시민안전실과 시의회 도시안전위원회 김쌍우 의원 발의로 지방정부로서는 처음으로 제정, 공포한 ‘지질지반조사 자료의 구축 및 활용에 관한 조례’는 인상적이다. 이 조례는 대도시의 지진 위험지도 작성과 효율적인 지진재해대응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필수적인 도심지 지하의 지질 및 지반 정보를 획득하기 위해 부산시와 산하단체에서 발주한 건설공사 시 지질·지반 정보의 생산과 자료 제출을 의무화하고 있다. 지진 위험지도는 지진 발생 시 지역별 재난발생 위험도를 예측하고 고위험 지역을 미리 선정하여 내진 기준과 보강의 우선순위 결정, 위험 시설물의 배치, 구호시설 선정 등을 위해 선진국에서는 이미 널리 활용된다.

이런 지도 작성을 위해서는 지하의 지질과 지반에 관한 과학적 정보가 필수적이나, 대도시는 대형 건물과 아스팔트로 덮여 있어 건설공사가 시행되지 않은 때는 정보 획득이 불가능하다. 부산시뿐만 아니라 다른 도시에서도 이러한 조례를 통해 장기적 관점에서 도심지의 지하 정보를 수집하고 데이터베이스화해 신뢰할 만한 지진 위험지도를 작성할 필요가 있다. 양산시도 경주지진 이후 부산대에 의뢰해 기존 지하정보를 이용해 예비 지진위험지도를 작성하였으며, 이를 토대로 지진 대피소와 구호소 선정 그리고 시설물의 내진보강 등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

지난해 경주지진은 충격을 안겨주었지만, 우리 사회의 인식과 제도에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이 지진으로 크고 작은 인적·물적 피해가 발생하였지만, 올해 8월 21일 이탈리아 이스키아섬에서 발생한 규모 4.0의 지진(2명 사망, 42명 부상, 1500명 이재민 발생)과 비교하면 얼마나 다행스러운가. 만약 경주지진이 지하 11~15㎞가 아닌 지표 근처에서 발생해 지표면이 파열되었다면 피해는 훨씬 컸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경주지진은 지진에 대한 대비에 별다른 관심 없었던 우리에게 한편으론 감사하고 교훈적인 지진이 되었다.

행정안전부의 지진단층조사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4, 5년 후 먼저 경남·북 일원의 활성단층지도가 공개될 예정이다. 이 지도에는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앞으로 붉은색의 활성단층이 표시되어 있을 수도 있다. 사실 걱정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우리 세대는 경주지진보다 더 큰 지진을 겪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과거 역사시대 동안 한반도에 규모 6.5 이상의 강진이 분명 여러 차례 발생하였음을 상기하면 위험 시설물에 둘러싸여 살아갈 미래 세대를 위해 다가올 지진 피해를 어떻게 최소화해 줄 것인가를 슬기로운 마음으로 머리 모아 고민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부산대 지질환경과학과 교수